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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Aug 10. 2020

현기영- 순이삼촌

분석문

순이 삼촌은 1978년 발표된 현기영의 단편소설로 제주 4.3 사건을 중심으로 해서 당시의 일을 겪은 인물들과 그 현장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인 ‘순이삼촌’이라는 인물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서울로 상경해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30대 후반의 주인공이 7년 만에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가 ‘순이 삼촌’의 타계 소식을 들으면서 시작된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현재 서울에서 지내면서 대기업의 중역으로 일하고 있는 평범한 장년 남성인 주인공은 큰댁 식구들에게서 할아버지의 제사차 고향으로 내려오란 소식을 듣고 제주도로 내려간다. 7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까지 일본으로 떠난 뒤 지금까지 가족을 찾지 않은 탓에 주인공은 어린 시절을 거의 고아로 지냈다. 그런 그에게 제주도는 상처만이 남은 땅이었다.


제주도에 온 뒤 고향인 북촌마을에 도착하여 제사를 지낸 그는 순이삼촌이란 여성이 보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자신의 사촌 형인 길수에게 순이삼촌이 왜 안보이느냐고 묻자 얼굴이 어두워진 길수 형이 숨겼던 사실을 고백한다. 실은 주인공이 오기 전 그녀는 며칠 전 옴팡밭에서 자살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자 어른들 모두 30년 전의 일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날의 기억은 30년 전 음력 섣달 어느 날의 일이었다. 돌연히 군경들이 남녀노소 상관없이 사람들을 국민학교 운동장으로 불러 모으는 안내방송을 했다. 조금 뒤 방송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초등학교의 운동장으로 모이자 군경들이 친척 중에 군인이 있는 이들은 나오라 명하고, 가족이 없는 이들을 전부 교문 밖의 공터로 끌고 가 무차별적인 총격을 가했다.


이 지옥과도 같은 현장에서 목숨을 부지한 사람은 순이삼촌 한 명 뿐이었다. 그런 그녀조차도 그녀 자신의 배 속의 아이를 빼고 남은 가족들을 그 자리에서 모조리 잃는 참변을 겪었다. 그 뒤 아이를 낳고 옴팡밭을 일구며 하루하루 입에 풀칠만 겨우 하는 생활을 하던 그녀는 서울로 올라와 상처를 치료하려고도 해보았지만 결국 그날의 상처를 이겨내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야기가 끝난 뒤 주인공은 밖으로 나가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러면서 순이삼촌의 죽음은 이미 30년이라는 시간이 묵혀 있었던 운명이었고 삼촌은 이미 그때 죽었던 인물이며 그 상처는 30년의 기나긴 잠복기를 보낸 뒤 비로소 가슴 한복판을 꿰뚫어 그녀를 죽게 한 것이라 생각했다. 순이삼촌의 죽음은 며칠 전의 자살이 아닌, 30년 전의 학살이었던 것이다.

이상이 순이삼촌을 중심으로 본 <순이삼촌>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이 작품은 세세하게 분석할수록 내용상으로나 형식상으로나 특이한 요소들이 눈에 띄는 소설이다. 우선 일인칭 관찰자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서술하고 있으며 외부 안에 내부의 이야기를 담아서 구성한 액자식 형식이 특징적이었다. 또한, 소재로 택한 제주 4.3 사건도 우리나라 문학에선 최초의 작품이었다. 감상의 관점에서 보면 <순이삼촌>은 극의 전개와 인물이 갖는 의미가 작품이 지니는 주제 의식을 선명히 떠올리도록 만드는데, 순이삼촌과 제주도 사람들을 ‘잘못된 역사가 낳은 희생양’으로 인식되게 한 것이 그 예시다. 이를 통해 이념의 폭력성, 그중에서도 학살에 대한 상처를 드러내는 효과의 깊이가 여타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밖에도 주인공이 순이삼촌이란 존재를 ‘고향’,하면 떠오르는 존재로 여기는 점을 보고 나는 양귀자의 <한계령>의 주인공과 유사한 점이 있다고 느꼈다. 물론 <한계령>에 나오는 주인공은 고향의 의미를 떠오르게 해주는 존재인 그녀를 망설임 때문에 찾아가지 않지만, 그가 가진 정서는 확실히 <순이삼촌>의 그것과 비슷한 향기가 났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본 작품은 처음에 주인공과 고향이 가지는 거리감에 대해 조명하다가 갑자기 포커스의 방향이 순이삼촌으로 돌아간 셈이니 이 역시 <순이삼촌>만의 특이한 요소라 평가할 수 있겠다. 일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특징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사실 이 작품은 작품성이나 내용보다는 읽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게 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아 마땅한 작품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4.3사건을 최초로 다룬 소설이기도 하고, 대중들에게 충분한 교훈과 경각심을 주는 것이 주된 목적인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나 고모부, 사촌형보단 순이삼촌이 겪은 일과 인생의 모습을 그토록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결말 부분까지 묘사한 것은 아마도 그 의도의 일환이었으리라 추측된다. 문학이 가지는 사회적 힘과 역할이 가장 잘 발휘된 작품이 바로 이 <순이삼촌>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그런 마음의 상처를 입고도 30년이라는 세월을 악착같이 살아남은 ‘순이삼촌’을 보며 경외심이 들었다. 어쩌면 현기영 작가는 이 순이삼촌이라는 인물을 통해 ‘어떤 고난과 시련이 닥친다 해도 살아남은 사람은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자신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이 작품을 읽은 우리는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순이삼촌이 떠나고 남은 사람들이 되었다. <순이삼촌>의 본문에 나오는 사촌 형이나 고모부처럼, 나름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순이삼촌이 겪은 역사를 기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를 기억하기로 하면서, 이만 글을 줄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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