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HAN Aug 10. 2020

켄 리우 -종이동물원

분석문

창작물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 중 가장 쉬운 방법은 보편적인 정서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서 중에서 어머니의 사랑, 모성애는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감정이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 어머니가 누구보다도 힘든 생애를 보낸 사람이라면 그녀가 보여주는 모성애의 파급력은 훨씬 더 클 것이다. 감동으로 박진하는 11장의 단편 소설 <종이 동물원>은 바로 이런 어머니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종이 동물원>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홍콩 출신인 엄마가 종이접기로 만들어준 장난감을 잘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의 잭은 신비한 힘으로 종이에 생명을 불어넣는 엄마와 종이 장난감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엄마는 포장지로 상어, 사자 등 다양한 동물들을 접어주었다.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는 동물들과 함께 잭은 행복한 유아기를 보냈다. 그러나 크면 클수록 자신의 어머니가 주변의 다른 엄마들과 피부색도 다르고 영어를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잭은 어머니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중국어로 말을 걸면 대답하지도 않고, 어눌한 영어로 말을 붙여도 짜증이 솟을 뿐이었다. 잭이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즈음에 어머니는 더이상 종이를 접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잭 또한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바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중화의 피가 섞인 잭이 아니라 '미국인 잭'으로 살기 위해서.


시간이 흘러 잭이 대학생이 되어 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그의 어머니는 평상시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통증이 사실 암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병원신세를 지고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병문안을 간 잭은 어머니를 걱정하지 않았다. 아직 다 하지 못한 자신의 과제물을 걱정했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는 만약 자신이 일어나지 못하면 종이장난감을 담은 상자를 열어보면서 엄마 생각을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잭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기고 만다. 그가 대학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한창 국경을 넘고 있을 때 어머니는 숨을 거둔다. 어머니가 죽은 뒤 잭의 아버지는 팍삭 늙어버렸다. 살던 집은  아버지 혼자서 살기엔 너무 커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잭은 여자친구 수전과 함께 짐을 정리하며 이사를 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방 안에 있던 잭에게 갑자기 어떤 종이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어릴적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사자 모양의 장난감이었다. 그 사자는 잭에게 달려들더니 저절로 풀어졌다. 풀어진 종이의 하얀 면엔 한자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한자를 몰랐던 잭은 곧장 거리로 나가 중국인 관광객에게 해석을 부탁했다. 종이에 적힌 한자는 어머니가 잭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자신이 종이 인형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 살아온 생애, 아들인 잭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 등등 대화가 끊겨서 도저히 전할 수 없었던 말들이 편지에 담겨 있었다.


편지의 해석을 다 들은 잭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대신 관광객에게 편지글 밑에 아이(사랑 애)자를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그 종이를 접어 사자를 만들었다. 그렇게 잭과 사자는 집을 향해 걸어간다. 여기까지가 <종이 동물원>의 줄거리이다.


이 작품의 문체는 담담하다. 잭과 어머니의 단란한 시절을 묘사한 초반부를 제외하면  최후반부인 어머니의 편지글을 읽기 전까지 잭은 어머니에 대해 냉정한 태도로 일관한다. 이 과정은 결말 부분의 큰 감동을 위한 기초작업이다. 건조한 작품 분위기를 중국인이 편지를 해석해주는 장면부터 급격하게 반전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종이 동물원>은 독자에게 짙은 여운과 아련함을 가져다준다. 1인칭 시점의 소설이 자주 택하는 '감정선의 조절'이다. 읽는 사람이 등장인물의 심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갑자기 바뀌는 장면에 전혀 대비하지 못하고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도 어머니가 잭이 웃었을 때 '세상 모든 걱정이 사라진 것 같았다'라고 적은 구절을 보고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수법이었다.


한편 '살아 움직이는 종이접기'라는 비현실적인 설정도 독특하게 느껴졌다. 그냥 종이접기도 아니고 생명을 불어넣는 마법이라니, 나는 이것이 후반부의 극적인 연출과 잭이 보낸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의 보정을 위해서 설정되었다고 본다. 만약 어머니가 접어준 종이 사자가 그저 종이였다면 잭이 어머니의 작품을 보관하는 일도, 나중에 다시 발견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종이 동물원>은 전체적으로 가볍게 읽기에 좋은 소설이었다. 짧지만 나름의 여운과 가치를 남기는, 오후 3시의 티타임같은 작품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 갈비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