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배우는 죽음학
《룸 넥스트 도어》2024년 개봉한 스페인 드라마 영화이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What Are You Going Through)가 원작으로,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감독을 맡았다. 알모도바르 감독의 첫 영어 장편 영화이다. 제81회(2024년) 베네치아여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잉그리드는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낸 옛 친구 마사가 암 투병중이라는 사실을 듣고, 그녀의 병문안을 간다. 오랜만에 만난 마사는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치료를 거부하고,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내게는 죽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을 때 창 밖으로 분홍빛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네가 지쳐 누워있던 숲으로
네 딸과 내 위로
산자와 죽은자 위로"
-제임스 조이스
마사의 혈육으로는 옛날 남자친구 프레드와의 사이에서 나은 딸 미셸이 있었다. 프레드는 베트남전 참전 후 PTSD에 시달리다가 마사를 떠나 다른 여자와 결혼했고,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마사와 거의 연을 끊고 지내던 미셸은 마사가 죽음을 결심했다는 소식에도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다. 잉그리드와 마사는 자신들의 남자친구였던 데이미언 이야기, 잉그리드가 조사하고 있는 화가 도라 캐링턴 이야기, 마사의 과거 종군 기자 시절 이야기 등을 하며 한동안 같이 지낸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의 동행인이 되어 달라는 마사의 부탁에 잉그리드는 큰 혼란에 빠진다.
암이 악화되어 고통이 심해지자 마사는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기로 한다. 다크웹을 통해 안락사 약을 입수한 마사는 산속 별장에서 약을 먹고 죽을 테니 잉그리드에게 그 옆방에만 있어 달라고 한다. 잉그리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마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한편, 데이미언과 논의하여 후일 법적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해둔다. 그렇게 두 사람은 별장에서 죽기 전 한 달여를 같이 보내게 된다. 마사는 자신의 방문이 닫혀 있으면 그때 자신은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고 일러둔다.
별장에서 두 사람은 자유롭게 지낸다. 마사는 점점 매사에 흥미를 잃어간다. 잉그리드는 은근히 마사를 구슬려보기도 하지만 죽기로 결심한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같이 지낸지 한 달이 다 되어갈 즈음, 잉그리드는 데이미언과 만난다. 데이미언은 기후변화 때문에 세상에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이후 마사가 별장에 돌아 왔을 때 마사의 방문이 닫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마사는 발코니에서 햇볕을 받으며 죽어 있었다.
잉그리드는 마사의 죽음을 방조한 책임을 들어 경찰 조사를 받게 된다. 마사가 생전에 일러준 대로 마사의 계획을 전혀 몰랐다고 거짓말하지만, 경찰관의 집요한 추궁에 결국 변호사를 소환하여 빠져 나온다. 별장에 되돌아 온 잉그리드는 마사와 얼굴이 똑 닮은 딸 미셸을 만난다. 잉그리드에게 어머니의 삶과 죽음에 대해 물어본 미셸은 어머니와 똑같이 발코니에 눕는다. 잉그리드도 그 옆에 누워, 때마침 내리는 눈을 맞으며 마사의 죽음과 앞으로의 자신의 삶을 생각한다. (위키트리 줄거리 인용)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어쩌면 하나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잉그리드에게 죽을 때 옆방에 있어달라 한 것은 혼자 있고 싶지 않은 인간의 본능이었을까?
누군가, 친구가 나에게 그런 부탁을 한다면 마사처럼 할 수 있을까?
옛날같으면 생각도 못 할 일이지만 죽음학을 공부하고 나서 달라졌다.
스스로 선택한 존엄사에 동의하고 그 곁을 지켜줄 수 있다.
그것이 존엄사인지 자살인지 모호하다. 잉그리드도 자살방조죄로 경찰 조사를 받는 것 처럼.
내 책 제목처럼 나는 <마지막까지 우아하게> 죽기를 원한다.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내 죽음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떠나고 싶다.
지금 바라는 것은 항상 살았던 것처럼 집에서 살다가 죽는 것이다.
혼자 일 수도 있다. 마사처럼 옆에 있어달라고 할 친구가 있을지 모르겠다.
혼자라도 괜찮다. 집에서 혼자 죽을 수도 있다고 각오하고 있다
죽음이야기와 함께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색감이다. 알모도바르 감독이 칼라를 중요시 하기도 하지만
특히 이 영화는 두 친구의 옷과 가구, 벽에 걸린 액자까지 칼라풀하지 않은 것이 없다.
눈도 핑크색으로 내린다.
어쩌면 죽음의 색이 검정이 아니라 칼라풀한, 아름다운 색의 연장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죽는 순간까지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죽어간다고해서 죽은 사람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 인생을 의미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열심히 사는 것처럼 죽음의 방식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