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나다 공연 두 번째
뛰어!!!
버스에서 내린 rita샘이 갑자기 뛰기 시작한다. 뒤에서 따라가던 우리도 따라 뛰었다. 공연장에 거의 다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보다. 생각보다 멀다.
그렇게 숨차게 뛰어본 것이 몇 십년만일까. 고등학교 체육시간에도 잘 뛰지 않았다. 체육선생이 달리기를 계속 시키면 나 혼자 어기적거리면 걸어가던 불량학생이었다.
몇 백미터를 뛰었는데 대문이 하나 나오더니 계단이 보인다. 헉 계단은 싫은데. 공연이 시작했을지도 모른다니 나혼자 개길수도 없다. 숨을 헥헥거리며 입이 바싹 마른다. 죽어라고 앞 사람을 따라 뛰었다. 한참 올라가니 티켓을 받는 아저씨가 보인다.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공연잘 안으로 들어가니 다행히 공연은 시작하지 않았다.
그라나다 시내보다 꽤 높은 곳에 있는 공연장에 가려고 버스 정류장에 서있었는데 경찰이 와서 어떤 아줌마에게 뭐라뭐라 설명을 했다. 알아듣니 못하지만 눈치껏 살펴보니 거기서 버스를 기다리면 안 된다고 다른 정류장으로 가라는 것 같았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 더 아래쪽 버스 정류장으로 서둘러 갔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했다. 우리 나라 마을 버스보다도 작은 버스에 사람들이 가득 찼다.
시내에 무슨 행사가 있는지 노선이 임시로 바뀐 모양이다. 그래도 시간이 넉넉하니 공연 시간에 늦지는 않을 것 같아서 마음 놓고 있었다. 좁고 꼬불거리는 비탈길을 버스는 무섭게 달렸고 롤러코스트를 탄 것처럼 흔들렸다. 버스에 탄 꼬마 아가씨는 그것이 재미있는지 버스가 쏠릴 때마다 꺄르르거리고 웃어댔다. 웃음소리가 어찌나 경쾌한지 나도 따라 웃음이 지어졌다.
한참 신나게 달리던 버스가 산 중턱쯤에서 멈췄다. 차가 먹혀서 움지이지 않는다. 그렇게 5분, 10분이 지나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같은 공연장에 가나보다. 우리가 가는 극장에 유명한 곳이었네. 문제는 그곳은 정시에 공연을 시작한다고 하며 스페인 사람들도 걱정을 한다. 서 있는 버스 안에서 마음이 조급해진다. 8시에 시작인데 이미 8시가 다 되었다. 버티던 사람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한다. 걸어가는 게 빠르겠다 싶은 모양이다.
그 날따라 좁은 길에 버스가 엉키고 막혀서 우리만 늦은 게 아닌가 보다. 겨우 숨을 고르고 자리를 찾았다. 제일 앞자리라 시야에 걸리는 것 없이 무대가 잘 보였다. 우리가 자리에 앉은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겨우 사람들이 정리가 되었을 때쯤 조명이 꺼지고 어두워졌다.
깜깜한 무대 뒤에 블라인드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뒤에는 통창이 있고, 유리 너머에는 알함브라 궁전의 야경이 보였다. 상상도 못했다.
우와~~ 모든 관객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와~~ 저게 뭐야!!”
아주 가까이 조명으로 밝혀진 알함브라 궁전이 선명하게 보였다. 환상이다? 예술이다?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을까.
그 배경에 눈도 마음도 빼앗겨 있을 때 타악기 소리가 슬슬 시작되었다. 연주자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중창단이 무대를 채웠다. 플라멩코 공연에서 깐떼를 빼놓을 수 없지만 중창단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처음부터 혼자 공연을 이끄는 여자 무용수의 힘은 대단했다. 숄, 부채, 캐스터네츠, 바따데꼴라의 긴치마까지 아주 편하게 움직였다. 무대에 나온 처음 순간 보인 것은 그녀의 등과 팔 근육이었다. 큰 키와 긴 팔에 바디 빌딩 선수처럼 짱짱한 근육이 보였다. 그만큼 코어도 단단 할 것이고. 비주얼 만으로도 우리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춤이 한시간 넘게 화려하게 펼쳐졌다.
숄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쓴 모습도 인상적이고 긴 치마를 어렵지 않게 휘두르며 캐스터네츠를 치는 것도 놀라웠다.
어릴 때부터 플라멩코를 추며 몸에 밴 리듬감과 타고난 글래머러스한 몸매. 한국 사람이 따라가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플라멩코를 하고 싶으면 스페인에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라도 핑계를 대고 싶다.
모두 흥분된 표정으로 공연장을 나왔다. 바로 앞에 여전히 알함브라 궁전이 버티고 서있다. 알함브라 궁전이 야경을 즐기며 시내까지 걸어 내려갔다. 그라나다를 떠날 때가 다되서어 이제 마지막으로 보는 풍경이었다. 언제 다시 갈 수 있으려나.
rita샘 말로는 우리가 아주 운이 좋은 거라고 했다. 그 날따라 정각에 시작하지 않고 우리를 기다려주었고, 덕분에 블라인드가 올라가는 순간을 놓치지 않아서. 그 순간을 보지 않고 열려있는 상태로 보았다면 그만큼의 감동은 없었을 것이다. 샘도 일부러 사전에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고. 공연의 질도 항상 최고는 아니라고 했다. 다양한 공연이 있는 만큼 좋을 때도, 아닐 때도 있으니까.
여행 내내 너무 좋은 날씨와 운이 따랐던 우리가 그동안 착하게 산 걸까. 아니면 샘 말처럼 앞으로 착하게 살라는 의미일까. 어느 쪽이든 행복한 그라나다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