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수업
시차 덕분에 새벽에 눈을 뜬다. 나답지 않게. 일찍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10시까지 Ray 스튜디오를 가는 날이다. 지하철을 타고 30분이면 갈 수 있단다.
간단한 주소를 받아 들고 구글지도를 펴고 역에서 이리저리 걸었다. 구글 내비의 화살표가 뱅뱅 돈다.
‘뒤로 돌아’를 세 번쯤 하고서야 겨우 방향을 찾았다. 5분만에 주소에 있는 빌딩 앞에 도착했는데 스튜디오 호수는 없다. 두리번 거리다보니 플라멩코스러운 벽화가 크게 그려진 곳이 있다. 셔터가 내려져 있다.
‘여기가 맞나.... 닫혔는데?’
시간이 좀 남았으니 샘이 올 때까지 골목 모퉁이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머리를 끌끔하게 올백으로 묶은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묻는다.
“flamenco?”
아 이 사람이 Ray인가보다. 우리가 고개를 주억거리니 따라오라는 듯 고개짓을 살짝하고 걸어간다.
드디어 셔터가 올라갔다.
그라나다에 도착했을 때 만해도 현지에서 수업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Rita샘의 순발력으로 원데이 레슨이 성사되었고, 우리의 여행은 더욱 알차게 채워졌다. 플라멩코를 배우다 보면 스페인 가서 배워보고 싶다는 막연한 로망이 생긴다. 그렇다고 실력이 일취월장 하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처음하는 현지 수업이 기대가 되었다. 우리 네명의 실력이 다 다르고 한시간 뿐이라 많은 것을 알려 줄 수는 없으니 가장 많이 하는 fiesta blerias 한토막을 하기로 했다. 열심히 뛴 덕분인지 집중한 덕분인지 땀이 났다.
틀리지 않고 따라하려고 집중하다보니 순식간에 수업이 끝났다. 뭘 배웠나 멍한채로.
음주가무에는 워낙 소질이 없는 나는 같은 안무를 배워도 그것을 몸에 익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함께한 일행들은 뮤지컬 배우들이라 확실히 금방 배우고 잘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괴감 느끼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내가 기특할 뿐이다. ㅋㅋ
물론 아쉬운 마음은 들지만...
평소에도 안무를 익히는데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대신 영상을 보고 고민을 한다. 내가 못 하는 것이 뭘까. 선생님과 다른 점은 뭘까. 뭐가 틀렸을까. 게을러서 몸을 써서 연습을 하는 대신 머리 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도 수학 문제는 손으로 풀어야 한다는데 나는 눈으로 문제집을 읽었다. 선생님 말씀 지지리도 안 듣는 학생이었다.
연습 영상을 한참 보고서야 안무 순서도 외우고 어떤 포인트가 이상한지 찾곤 하는데 그라나다 수업을 하고 나서도 다시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 춤을 보면서 심플한 야마다도 남들은 아주 절도 있게 보이는데 같은 동작을 해도 나는 힘이 없다. 끼가 없는 건지, 힘이 없는 건지 하여튼 나는 뭔가 빠져있는 느낌이다. 플라멩코의 혼이 없어서 그런가. 억지로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생각한다고 금방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지만 뭐든 내 스타일로 만들어야 하는 것 같다.
글을 쓰는 것도 강의를 하는 것도 나답게, 플라멩코도 나답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그러나 예쁘게 잘 하고 싶다. 나다운 플라멩코는 뭘까.
멤버들이 모두 내가 만든 티셔츠를 입고 와서 겸사겸사 기념사진을 남겼다. ray가 빨간 드레스가 그려진 아르떼 티셔츠를 좋아해서 바로 내가 입던 티셔츠를 벗어주었다. 땀이 밴채로~
"선물이야, 빨아서 입어 ㅋㅋ"
작년 아르떼 공연 기념으로 그림을 그려서 만든 단체 티셔츠인데 멤버들이 좋아하고 여행을 갈 때도 다들 챙겨줘서 제작자로서 보람있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