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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어른 되기

만만한 어른 되기     

  할아버지 할머니를 연상하면 보통 두 가지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인자한 할아버지다. 꼬마들이 장난을 쳐도 허허 웃으시는, 웬만한 것은 다 이해 해 줄 것 같은 어른들이다. 다른 하나는 스크루지처럼 무섭고 심술 맞은 노인네이다. 실제로도 고집만 세고 말이 안 통하는 어른이 많다. 


  우리는 어느 쪽일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세상 살다보니 되는 일도 없지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웬만하면 그럴 수도 있지 싶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그리 열 받을 일도 없다 나이가 들수록 아는 것도 많아지고 세상 이해의 폭도 넓어져서 인자하고 지혜로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사회적인 지위가 올라갈수록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대접받기를 원하고 그렇지 않으면 삐지고 심술부리는 어른이 더 많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젊은 사람들에게 초면에도 반말을 하거나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로우대 사상이 투철한 것은 좋은 점이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나이가 특권이 되기도 한다. 모임에서도 어린 친구가 알아서 움직여주면 좋을 때도 있지만 그걸 당연시해서 마음대로 시키는 것은 편치 않다. 여자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면서 여자니까 당연히 해야 한다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그런 점을 너무 의식하다보니 부작용이 생겼다. 나는 나보다 연장자들한테는 친해지면 말을 놓기도 하는데 오히려 후배들한테 더 조심을 하는 때가 있다. 상대방이 말을 놓으라고 할 때까지는 반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고집 센 할머니가 되는 것보다는 편안한 할머니로 늙고 싶다. 삼십대부터 나의 희망사항은 곱게 늙기였다. 곱게 늙는 다는 것은 외모가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해의 폭도 마음의 폭도 넓은 인상이 후덕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젊은 사람들 얘기도 들어주고 말이 통하는 할머니. 애들이 나를 좀 만만하게 생각한들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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