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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가꾸기

정원가꾸기     

 가을 하늘이 우리를 유혹하는 요즘 나는 밖으로 나가는 대신 옥상에 올라간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오고 옥상 정원을 꾸미고 싶은 마음을 3년 동안 참았다. 물론 비용 때문이다. 잘 만들어져 있는 정원에 꽃만 심는 것이라면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파트에서 주목으로 대강 메꾸어 놓은 화단을 다 파내서 흙부터 다시 넣어야하는 일은 너무 큰 공사였다. 


  이사한지 2년 반 만에 전에 살던 집이 팔리고 기회가 왔다. 이사하고 3년이 지나면 1가구2주택이 된다니 좀 싸게라도 팔아서 세금내고 대출을 정리하고 나니 남은 것이 별로 없었지만 더 미루면 영영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집을 팔았으니까 라는 것을 핑계 삼아, 위안삼아 올해 봄에 대공사를 시작했다. 화단을 싹 비우고 좋은 흙을 섞어 넣고 주목은 가장자리로 옮기고 다양한 야생화들과 꽃이 피는 작은 관목들, 억새같처럼 생긴 글래스 종류를 어울리게 심었다. 3박4일 여러 명이 공들여 공사를 했다. 내 예상보다 견적이 두 배는 나와서 놀랐지만 요즘 인건비가 비싸서 내가 생각했던 비용은 인건비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봄에는 라일락이 피고 여름에는 목수국과 배롱나무에 꽃이 늘어지고, 가을엔 국화가 향기를 뿜는다. 모닝라이트도 키가 커져서 갈대밭을 보는 기분이다.  

  겨울에 심심할까봐 화단 벽에 그림을 그렸다. 아크릴 물감을 주문해서 풀도 그리고 꽃도 그리고 겨울에도 볼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그림그리기 좋아 하는 친구들이 와서 몇 개 함께 그리기도 했다. 함께 그리는 것은 좋은 놀이이다. 

  재주 많은 친구가 토끼와 고양이도 그려주어서 허전했던 옥상 벽들도 예쁘게 단장을 했다.                 



             


 여름에는 매일 물을 줘야하는데 해가 뜨거울 때 물을 주면 꽃이 타버린 데서 이른 아침에 눈이 떠지면 부스스 옥상으로 올라가서 물을 주고 내려와서 다시 침대로 들어가기도 한다. 아침에 나가느라 급하면 밤중에라도 돌아와서 불을 켜고 물을 준다. 

 매일 키가 얼마나 자랐을까, 잎이 마르지는 않았을까, 살피고 꽃을 피어주면 감사하다. 작은 화단이지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행복하다. 


 날 좋은 날 멍때리기 좋은 공간. 작년 가을 코스트코에 가서 캠핑용 의자를 하나 샀다. 푹신하고 뒤로 많이 누워진다. 책 한권과 커피 한잔 들고 올라가지만 그 의자에 앉아 조금 있으면 아무 생각이 안 나고 조금 더 있으면 잠이 스르륵. 결국 독서에는 안 맞는 구나 결론을 내리고 멍 때리는 쪽으로 노선을 정했다.      

  

  부지런한 친구들은 그만한 화단이면 상추 고추 토마토 다 심을 수 있겠다고 한다. 나는 게을러서 농사를 지을 엄두가 나지 않지만 화단 가꾸기에 적응이 되고 조금 부지런을 떨게 되면 한쪽에는 고추 상추도 심어봐야겠다. 

  내년 봄에는 내가 기른 상추를 따서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겠다. 친구들 불러서 먹을 것도 나누고 시간도 함께 나누는 것이 정원을 가꾸는 한가지 이유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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