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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천명은 무엇일까

나의 지천명은 무엇일까     

 삼십은 이립(而立), 사십은 불혹(不惑), 오십은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과연 그런 단계를 다 지나왔을까. 요즘은 수명이 길어지고 신체 나이도 옛날 사람들보다 30%정도는 어려지고 젊게 사는 것처럼 공자님의 라이프 사이클도 수정이 되어야 맞는 것 같다.      


 오십이 지나 육십을 바라보니 이제야 불혹이라는 느낌이 온다. 마흔은 불혹은커녕 매일 유혹과 갈등에 흔들렸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고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물질적인 유혹도 멀리하게 된다. 내 삶의 기준들은 내가 정한다.     

  공자님 말씀대로면 지천명이 지났건만 나의 소명은 무엇일까.  이 책을 쓰면서 찾아가고 있다.


 내가 오늘 뭘 하고 싶은지, 뭘 먹고 싶은지도 모를 때가 많은데 하늘의 뜻을 어찌 알겠는가. 죽을 때까지 모를 수도 있다. 다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찾아보자. 

  직장을 다니고 가족을 위해서 사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의 전부이지는 않을 것이다. ‘나’라는 개인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누구의 딸이기 전에, 아내이기 전에, 엄마이기 전에, 나는 한 여자였고, 여자이기 전에 사람이다. 삼십대 엄마들은 어린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어서 나의 자유로운 시간이 부럽다하고 사십대 잘나가는 미혼 후배들은 내가 심리적으로 안정 되어 보여 부럽다한다. 그럼 단순한 비교가 가끔 화가 날 때도 있다. 나는 너희 나이 때 더 힘들었다고 외치고 싶다.     


  이제는 사회적인 의무에서 벗어 날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조금 편해 진 것일 뿐이다. 누구나 나이가 많다고 저절로 편해지지는 않는다. 예전에 같이 수필을 공부하던 분 중에 다섯 시에 수업이 끝나면 남편 저녁상을 차리러 정신없이 집으로 들어가는 분이 있었다. 칠십이 넘으셨는데 일주일에 한번 공부하러 나오는 것도 편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번인데 문우들과 차라도 한 잔 하고 싶어 하셨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은 아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주부들이 자기 시간을 가지려면 약간의 투쟁과 타협이 필요하다.

 젊은 부부들 중에 주말이면 남편이 아기를 보고 아내가 외출을 하는 커플이 있다. 어른들이 들으면 주중에 일한 남편에게 육아까지 시킨다고 야단을 칠지도 모르겠다. 아빠도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을 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기 엄마도 숨도 쉬고 자기 계발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 사는 사십대 아들 수발하느라 힘든 엄마도 있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공부만 잘하면 무엇이든 용서 받는 문화가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의 스펙이 엄마의 훈장이 되는 사회가 문제 인지도 모르겠다.   

   

 오십대 이후에는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는 누구일까에 조금 관심을 기울여주자. 왜 여자 얘기만 하냐고? 남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가장으로서가 아닌 나는 어떤 남자인지,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아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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