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영정 사진
작년 연말 처음으로 영정 사진을 찍었다. 내가 죽음학 수업하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가 소개를 해줬다. 어느 사진작가가 연말마다 신청자를 모아서 영정 사진을 찍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SNS에서 링크를 찾아서 신청했다.
차가 막히는 연말에 우리 집에서 종로까지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지만 약간 설레는 기분으로 서둘러 나갔다.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주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키고 기다렸다. 시간이 다 되어 장소를 찾았다. 오래된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까지 힘들게 올라갔다. 작가와 인사를 하고 숨을 돌리고 스튜디오처럼 꾸며진 방으로 들어갔다.
공유사무실 위층에 있는 카페 한쪽 공간을 암막 커튼으로 막았다. 부드러운 조명이 하나 켜있고 어두웠다. 작가가 나에게 커다란 헤드셋을 건넸다. 헤드셋을 머리에 끼자 차분한 음악과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골목 한쪽이 시끌시끌해서 소리를 따라가 보았다.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며 장례식 준비하고 있었다. 나의 장례식이었다. 내가 누워있고 주변에 아는 사람들 얼굴이 보인다. 누가 보이나요? 눈을 뜨니 작가가 물었다.
“마지막 순간에 옆에 있는 사람이 떠오르시나요?”
“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표정을 마음대로 지으시면 됩니다”
나는 아들이 떠올랐다.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은 얼굴은 아주 편안한 모습이다. 최대한 편안한 표정. 세상의 모든 짐을 다 내려놓고 해탈한 사람 같은 얼굴. 활짝 웃지는 않지만 슬프지도 않은 온몸에서 힘을 쭉 뺀 자세로 나의 첫 번째 영정 사진을 찍었다.
결과물이 기다려졌다. 작가님 SNS에 다른 사람들의 사진이 가끔 올라왔다. 대부분 아주 활짝 웃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모두 자기만의 사연을 가지고 영정 사진을 찍으러 올 것이다. 나처럼 죽음에 관심이 있어서 오는 사람도 있고, 연말 이벤트로 하는 사람도 있다. 해마다 연말에 영정 사진을 찍는 것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결과물은 아주 마음에 들어서 새로운 프로필 사진으로도 잘 쓰고 있다. 책 내지에 작가 프로필에도 들어가 있다. 내가 영정 사진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놀란다. 무슨 영정 사진을 벌써 찍느냐고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옛날에는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영정 사진을 미리 준비해두지 않아서 가족들이 앨범을 뒤져서 아무 사진이나 갖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독사진도 아니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찍은 사진에서 오려서 확대하기도 한다. 그나마 요즘은 포토샵 기술이 좋아서 확대하고 선명하게 작업을 해서 영정 사진을 만들어 준다.
내가 죽고 나서 이상한 사진이 영정 사진으로 올라가 있지 않게 나는 미리 준비해놔야겠다. 지금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되지는 않겠지만 해마다 찍다 보면 언젠가 쓰이게 될 날이 오겠지.
내가 40대 초반쯤이었나. 산부인과 의사였던 친한 선배가 과로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침에 일어나지 않아서 아들이 들여다보니 이미 떠난 뒤였단다. 소식을 듣고 저녁 문상하였다. 항상 밝고 씩씩하고 분이셨는데 마음이 아팠다. 영안실에 발을 들인 순간, 화사한 미소를 띤 영정 사진을 보았다. 갑자기 욱하고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터졌다. 남의 장례식에서 그렇게 울어 본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냥 무표정한 사진이었다면 덜 했을까. 너무 예쁘게 웃고 있는 영정 사진 속 선배 얼굴이 죽음이라는 현실과 대비되어 더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예쁜 사진을 영정 사진으로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올해도 연말이 되면 영정 사진을 새로 찍어야겠다. 한 해의 마무리로 영정 사진을 찍고 유언장을 고쳐 쓰고, 너무 우울한 연말이 되려나?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한 해를 또 힘차게 살기 위한 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