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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울 수 없는 후회

        

  15년 전 가을. 일요일 저녁 친정에 가서 누워계신 아빠를 보고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아빠가 돌아가셨다. 다시 친정으로 달려갔다. 안방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계셨다. 살아계실 때와 별 다름이 없어보였다. 주검이라는 느낌도 없고 아무 실감이 나지 않았다. 6년 넘게 마음이 준비가 된 것일까.     


  장례식장을 준비하고 이틀째 날 입관식이 있었다. 장례식장 구석으로 돌아가니 입관을 하는 방이 따로 있었다. 가족과 친척들이 들어가니 중간에 유리창이 있고 그 너머에 염을 하는 곳이 보였다. 두 명의 전문 장의사가 아빠의 시신을 닦고 수의를 입히는 의식을 진행했다. 조용하고 절도 있게 시신에 대한 예를 다하여 신성함에 느껴질 정도였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왔지만 무섭거나 불편함은 없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은 멍하니 슬픈 줄도 모르고 지나갔다. 4일장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야 아빠의 부재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불쑥 보고 싶고 그립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2년 뒤. 동생이 그 뒤를 따라 갔다. 문제는 동생의 입관식이었다. 엄마가 먼저 보낸 아들 장례를 할 수도 없고 자살한 자식 부고를 낼 수도 없고. 동생의 장례는 오롯이 내 몫이었다. 이튿날 병원 측에서 입관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빠를 보낼 때 다 해본 일이었지만 나는 동생의 입관식 앞에서 주저 앉고 말았다. 동생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시신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 장면을 보아 버리면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서웠다.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혼자 울고 있는 동안 의식이 끝이 나고 친척들이 나왔다.     


 그날 나의 비겁함은 나에게 또 한 겹의 죄책감을 더했다. 살아 있을 때 더 챙기지 못한 죄에 더해서 제대로 보내 주지도 못했다는 후회가 나를 무너뜨렸다.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자기 합리화를 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다.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지 뼈에 새긴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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