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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다는 농담

오늘 저녁메뉴는 죽음입니다


  생존자가 되고 나서 코칭과 상담을 시작했다. 농담이라도 죽겠다는 얘기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고쳐주고 싶다. 직업병이라고나 할까.     

“힘들어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코칭 초기에 상담 실습을 하고 있을 때 만난 한 사람은 아주 비관적인 성격이었다. 일을 하다가 실패하거나 힘들면 죽어버리면 된다고 예사로 죽음을 말했다. 나는 죽겠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든, 아무런 힘도 없으면서 도와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을 느낀다. 몇 번의 상담을 거쳐서 다행히 그는 더 이상 ‘확 죽어버리면 되지’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몇 년 더 살고 스위스에 가서 안락사를 계획하던 마흔 살의 남자도 있었다. 상담인지 야단인지 모를 몇 번의 만남 후 그 거창한 계획은 없던 일이 되었다. 그가 몇 년 후에 죽겠다고 얘기해도 다들 농담으로 치부하고 아무도 진지하게 대꾸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 안 된다고 붙잡고 얘기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고 했다.     

  자살을 하려는 사람은 누군가 말려주기를 원하는 건지도 모른다. 말 한마디라도 건네고 아는 척해주면 괜찮아질지도 모른다. 힘든 순간에 누군가 ‘왜 그래. 괜찮을거야.’ 라고 한마디만 해준다면 한 명의 죽음을 막을 수도 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세상에 나 혼자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핸드폰에는 수백 개의 연락처가 있지만 편하게 전화할 사람 하나 없다. 내가 잘못 살았나 싶기도 하다. 너무 힘든 상황일 때 그 상황을 내가 해결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을 때 죽어버리면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 누가 잡아 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잡아 주고 싶다. 내가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옆에 있어주기라도 한다면 조금 덜 힘들지 않을까.     

  나에게는 힘든 경험들이었지만 그것이 내가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쓰일 수 있다. 사람들이 나로 인해 위로받거나 세상 살만하다고 한다면 좋겠다. 내가 상담하는 이유이다. 죽을 때 덜 후회하기 위한 일이다. 남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나를 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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