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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마다 영정사진

오늘 저녁메뉴는 죽음입니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Finally Me”라는 영정사진 프로젝트 공고가 나길 기다린다. 몇 년 전부터 찍기 시작한 영정사진은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벤트가 되었다.      

  옛날에는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영정사진을 미리 준비해두지 않아서 가족들이 앨범을 뒤져서 아무 사진이나 갖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독사진도 아니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찍은 사진에서 오려서 확대하기도 한다. 그나마 요즘은 포토샵 기술이 좋아서 확대하고 선명하게 작업을 해서 영정사진을 만들어 준다. 

 내가 죽고 나서 이상한 사진이 영정사진으로 올라가 있지 않게 나는 미리 준비해놔야겠다.      


 어떤 분이 네게 물었다. 영정사진은 누가 정해야 하는 거냐고. 정해진 법은 없다. 내가 쓰고 싶은 사진을 미리 골라 놓으면 본인이 원하는 대로 쓰면 될 것이고 그런 준비가 없다면 상주가 골라서 쓰면 된다. 나는 내 맘에 드는 사진으로 정해서 아들에게 알려주어야겠다. 너무 젊지도 늙지도 않은 사진으로.     


 내가 40대 초반쯤이었나. 산부인과 의사였던 친한 선배가 과로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침에 일어나지 않아서 아들이 들여다보니 이미 떠난 뒤였단다. 소식을 듣고 그날 저녁 문상하였다. 항상 밝고 씩씩하고 분이셨는데 마음이 아팠다. 영안실에 발을 들인 순간, 화사한 미소를 띤 영정사진을 보았다. 갑자기 욱하고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터졌다. 남의 장례식에서 그렇게 울어 본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웃는 사진으로 영정사진을 처음 쓴 사람이 가수 김광석이라고 듣긴 했지만 내가 본 장례식 중에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냥 무표정한 사진이었다면 덜 했을까. 너무 예쁘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 속 선배 얼굴이 죽음이라는 현실과 대비되어 더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예쁜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몇 년 전 처음으로 영정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 사진작가가 물었다. 왜 오게 되었는지. 지인 소개가 아니면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면서 어떻게 알고 왔는지 신기해했다. 내가 죽음학 수업하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가 소개를 해줬다. 어느 사진작가가 연말마다 신청자를 모아서 영정사진을 찍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SNS에서 링크를 찾아서 신청했다.      

  차가 막히는 연말에 우리 집에서 종로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았지만 약간 설레는 기분으로 서둘러 나갔다.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주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키고 기다렸다. 시간이 다 되어 장소를 찾았다. 오래된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까지 힘들게 올라갔다. 작가와 인사를 하고 숨을 돌리고 스튜디오처럼 꾸며진 방으로 들어갔다.

  공유사무실 위층에 있는 카페 한쪽 공간을 암막 커튼으로 막았다. 부드러운 조명이 하나 켜있고 어두웠다. 작가가 나에게 커다란 헤드셋을 건넸다. 헤드셋을 머리에 끼자 차분한 음악과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골목 한쪽이 시끌시끌해서 소리를 따라가 보았다.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며 장례식 준비하고 있었다. 나의 장례식이었다. 내가 누워있고 주변에 아는 사람들 얼굴이 보인다. 누가 보이나요? 눈을 뜨니 작가가 물었다.     

“마지막 순간에 옆에 있는 사람이 떠오르시나요?”

“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표정을 마음대로 지으시면 됩니다”     

 나는 아들이 떠올랐다.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은 얼굴은 아주 편안한 모습이다. 최대한 편안한 표정. 세상의 모든 짐을 다 내려놓고 해탈한 사람 같은 얼굴. 활짝 웃지는 않지만 슬프지도 않은 온몸에서 힘을 쭉 뺀 자세로 나의 첫 번째 영정 사진을 찍었다.     

두 번째 영정사진은 눈을 감고 편하게 찍었다. 문제는 세 번째였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다섯 달쯤 지났을 때, 연말이 다가오고 어김없이 나는 영정사진을 찍으러 갔다. 장례식 이후 내 마음은 여전히 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아무 때나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날의 주제는 나의 이름을 생각하는 것이었는데 잠시 생각을 하다가 또 눈물이 터저 버리고 말았다. 왜 우는 건지 나도 모른다. 작가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다가 주섬주섬 휴지를 건네주었다. 한참 진정하지 못하고 서럽게 꺽꺽거리다가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아니 우는 동안에도 사진기 셔터는 계속 눌러졌다. 몇 주가 지나서 완성된 사진을 받았지만 역시 그날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사진 속에는 초췌하게 나이 들고 피곤해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그 사진을 나의 영정사진으로 쓸 일은 없을 것 같다. 올해 연말에도 그다음 해에도 다시 찍을 테니 그 중에 하나가 언젠가는 진짜 나의 영정사진이 되겠지. 남은 사람들이 보기 좋게 편안한 얼굴로 남겨지면 좋겠다. 나이가 들수록 내 얼굴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니 잘 살아야지, 늙어서 예쁘지 않아도 진정한 어른다운 모습이길 바란다. 내 장례식에는 편안한 영정사진을 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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