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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례식에 틀고 싶은 음악

  사람들은 장례식을 상상하면 근엄한 장송곡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레퀴엠이 딱 맞는 곡인지도 모르겠다. 모차르트 레퀴엠도 좋겠지만 나에게는 너무 종교적이고 거창하다. 내 장례식은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옛날처럼 곡소리나는 장례식은 싫다. 옛날에는 곡소리가 망자를 보내주는 의식이었지만 지금은 유교 사회도 아니고 내가 조선시대 여인 스타일도 아니라서 통곡은 필요 없다. 산뜻하게 떠나고 싶다. 마지막에 덜 후회하게 지금 하고 싶은 거 다 찾아서 하고 미련 없이 떠나자. 장례식에 온 사람들도 내가 애처롭지 않게 잘 살다 갔다고 말할 수 있게.      

 예전에 가수 조영남씨가 자신의 히트곡이 화개장터밖에 없어서 자기 장례식에서 화개장터가 신나게 울려 퍼질지도 모른다고 얘기하며 웃었다. 화개장터는 싫지만, 장례식장이라고 꼭 슬픈 노래가 나와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장송곡도 무겁지 않고 우아하게. 나는 우아하다는 말을 참 좋아하나 보다. 

“죽을 때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우아하게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말하면서 의아하다. 우아하게 죽는다는 것이 가능하긴 할까. 우아하게 죽을 수는 없어도 장례식이라도 우아하게 만들어볼까.

우아하게 바흐의 첼로곡도 좋겠다. 잔잔한 피아노 솔로도 괜찮다. 백건우 선생님의 브람스 인터메조도 참 좋다. 요즘은 음악을 들을 때마다 장례식을 떠올리곤 한다. 며칠 전 백건우 고예스카스 독주회를 보며 그 연주를 내 장례식에 틀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백 선생님은 본인 장례식에 어떤 곡을 틀어놓고 싶을까 궁금해진다. 백 선생님의 뒷모습과 하얀 머리를 보면서 오래 활동하실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주를 들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남은 사람들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곡이라면 음악을 들으며 문상하는 사람들도 나를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죽음을 연상시키는 곡은 말러 교항곡 9번 4악장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곡에서 죽음을 느끼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들을 때마다 어김없이 눈물이 난다. 발인식때는 잠시 말러 9번 4악장을 틀어주면 좋겠다. 

말러가 죽음을 주제로 곡을 쓰기도 했지만 내가 상실로 힘들 때 많이 들어서 그렇기도 하다. 글을 쓰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말러 9번 4악장은 다시 들어도 눈물이 날까 실험을 했다. 유튜브에서 4악장을 찾아서 켜자마자 어김없이 눈물이 난다.      

우연히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대한 특강을 들었다. “침묵을 듣는 지휘자‘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음악가 중에서 음악적인 내공은 물론이고 인간적인 면에서 존경스러운 사람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아바도는 독재자같은 기존의 지휘자 스타일을 민주적인 지휘자로 바꾼 것으로 유명하다.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인격적으로 존경을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하필이면 마지막으로 소개한 곡이 말러 9번 4악장이었다. 아바도가 침묵을 어떻게 연주하는지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 설명을 듣자마자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수업 중에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울고 싶지는 않은데 어떡해야 할까 안절부절하다가 심호흡을 했다. 초초한 상태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루체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아바도가 암으로 돌아가시기 몇 년 전 녹음이 된 것이라 그의 마지막 말러 연주기도 했다.      

조용히 시작한 4악장은 마지막엔 소리가 줄어서 거의 들릴락말락하게 끝난다. 연주가 끝났지만 아바도는 비장한 표정으로 꼼짝하지 않고 서 있다. 마치 묵념을 하듯이 3, 4분 가량을 움직이지 않는다. 관객들은 물론 연주자들도 악기를 내리지 못 한채 숨죽이고 기다린다. 한참 후 아바도가 큰 숨을 쉬며 눈을 뜨고 관객들은 모두 일어서서 기립 박수를 친다. 침묵을 연주로 보여주는 정말 멋진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눈물이 차오르는 걸 막기 위해 천정을 쳐다보고 계속 큰 숨을 쉬었다. 

그러고 보니 죽음은 침묵이다. 죽음은 우리를 침묵으로 이끌어 간다. 말러와 아바도는 침묵으로 죽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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