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메뉴는 죽음입니다
작년 봄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던 시절, 뉴스에 90세 의사의 부고가 실렸다. 이름이 어딘가 익숙하다. 자세히 보니 어린 시절 살던 동네 내과 선생님이셨다. 우리가 어릴 때는 동네마다 작은 의원들이 있었다. 주로 내과와 소아과를 겸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태어 날 때부터 모든 가족이 그 병원을 다닌다. 집안 사정도 다 알고, 우리 가족 주치의 느낌이었다.
어른이 되고 그 병원을 더 이상 갈 일이 없었다. 이사를 여러 번 하고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의사선생님 얼굴은 또렷이 기억난다. 부부가 다 의사였는데 우리를 돌봐주던 분은 부인이었다. 목소리가 까랑까랑해서 성격도 까다로울 것 같은 이미지였다. 내 기억에선 사라졌지만 친정 엄마와는 계속 연락이 닿았던 모양이다. 병원 진료도 계속 하고 있어서 엄마가 코로나로 종합병원에 가기 복잡하고 어려운데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물어볼 수 있어서 든든했다. 필요한 약도 보내주고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다.
의사와 환자지만 60년을 이어온 인연이다. 그 의사 선생님이 코로나에도 환자를 계속 돌보다가 환자에게서 코로나가 전염되어 돌아가셨다. 죽을 때까지 의사로서의 책임을 다하신 것이다. 내가 어릴 때는 그냥 깐깐한 분이려니 생각했는데 미리 감사도 드리지 못하고 코로나가 너무 심할 때라 문상도 할 수 없었다.
의사라도 자기 몸이 아픈 것을 미리 알 수도 없고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종양내과 의사가 아무리 암에 전문의라도 자기가 암에 걸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H 선생님도 저명한 종양내과 전문의였으나 한창 일을 할 나이에 암이 나타났다. 다행히 치료가 잘 되었지만 병원 업무를 감당하기는 힘들고, 일보다는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니까 조금 일찍 은퇴를 하셨다.
전원생활을 꿈꾸며 미리 준비해 놓은 땅에 집을 짓고 자유인의 삶을 시작했다. 다양한 취미가 많아서 시골에서도 농사와 함께 글쓰기, 서예. 악기연주 뿐 아니라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다.
시골 생활 덕분인지 예전보다 더 건강해 보이는데, 얼마 전 ’이제‘ 유언장을 써야겠다고 하신다.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항암치료를 하고 죽을지도 모르는 그 시점에는 왜 유언장을 안 쓴 거지? 왜 아직 유언장을 안 쓰셨냐고 물었다.
죽음이 눈앞에 있다고 생각되는 그 시기에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단다. 자신은 절대 죽지 않을 거라고 믿으면서 치료에 전념해야 했단다.
그 말에도 공감이 갔다. 아픈 사람이 유언을 남기려 하면 주변 사람들이 말린다. 왜 죽을 준비를 하는 거냐며. 정신 차리고 살라고 한다. 그러다 유언장을 남길 힘도 없이 마지막이 되면 어떡하지. 답이 안 나오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머리 속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