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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란 것이 있을까

오늘 저녁메뉴는 죽음입니다

가끔 인생리셋 수업시간에 누군가 질문을 한다. 

“사후세계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윤회가 있을까요?”

나는 그것은 각자의 종교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으므로 종교에 따라 알아서 생각하시라고 말하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사후세계에 대해서 경험은 없지만 인간의 영적인 세계에 관심이 많다. 

내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고 하면 종교인도 아니고 종교에 대해 모르면서 어떻게 죽음에 대해 글을 쓰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종교인만 죽는다는 것인가.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한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모두 죽는다는 사실이다. 돈이 많든 적든, 잘났든 못났든 누구나 죽는다. 하물며 종교가 있든 없든 마찬가지다. 종교인만 죽음에 대해서 논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은 어처구니가 없다.      

반면 죽음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고 하면 영적인 체험을 이야기 해주겠다는 메시지를 받기도 한다. 얼마 전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해주고 싶다는 분을 만났다. 두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교 일학년 생일날,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아버지는 시골 할아버지 댁으로 내려가시고 어머니가 친구들을 불러서 저녁을 해주었다. 상을 차리다가 감치가 떨어졌다는 어머니 심부름으로 뒷마당 장독대에 김치를 가지러 나간 길에 장독대 위에 어슴프레 서 계신 할아버지를 보았다. 너무 놀라서 김치를 든 채로 뒷걸음치다 넘어지고 말았다. 놀라서 집으로 뛰어 들어오자마자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다

“방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할어버지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쯤 우리 집에 들려 내 방에서 함께 주무셨다. 떠날 때는 내 손을 잡고 당부를 하셨다. 친구들과 술 많이 마시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고...

그것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이셨구나 나중에서야 알았다.     

1998년 4월 5일은 비가 내렸다.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비가 와서 고속도로도 미끄러워 조심스러웠다. 앞차가 갑자기 급정거를 하고 나도 따라 브레이크를 힘껏 밟았다. 그러나 뒤따라오던 버스는 미처 서지 못하고 내 차를 들이박았고 앞으로 앞으로 밀려서 8중 추돌 사고가 났다. 내 차는 앞뒤 차에 끼여서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시신에 손을 대는 것을 금기시해서 다친 사람들을 우선 도와주었다. 

마침 반대편 차선에 지나가던 미군들이 차 사이에 끼여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들은 고속도로 분리대를 넘어 찌그러진 차 틈으로 나를 꺼냈다. 열명이 넘는 군인들이 동시에 달려들어 겨우 나를 구출한 것이다. 나는 그 당시 빨강 파랑 줄무늬 운동복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미군들에게는 그 옷이 성조기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성조기 같은 옷을 입은 것이 운명이었을까? 그 옷이 아니었다면 구출되지 못 했을까? 정신 차리라고 깨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으나 나의 정신과 몸은 지하실로 떨어지듯 쿵쿵 뒤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꿈이었을까? 우리가 상상하는 저승사자가 나타났다. 검정색 도포를 입고 검은 갓을 썼다. 나를 사슬에 묶어 끌어가려 했다. 아무리 버텨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키가 장승만큼 크고 힘이 쎘다. 질질 끌려 가다보니 복숭아뼈가 시멘트 바닥에 쓸려서 너무 아팠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은 순간 반대편에서 하얀 빛이 보였다.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나를 붙잡아 끌었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저승사자들은 연기처럼 휘리릭 사라졌다.

꿈에서 깨어보니 사고 후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온몸에 성한 곳이 있을 리 없었다. 여러 번의 수술을 거쳐 일주일만에 의식이 돌아온 것이다. 어머니에게 시집살이 시키는 할머니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오고 보나 할머니에 대한 미움을 씻은 듯 사라졌다. 깨어나자마자 할머니에게 말씀드렸다.

“할머니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물론 ‘전설의 고향’ 같은 귀신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티비에서나 보던 저승사자가 있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믿든 말든 개인적인 선택이다.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것은 상상이고 미신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가족의 사랑이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것이 영혼이든 귀신이든, 무의식이든 꿈이든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맞지 않아도 세상에는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도 많고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죽음을 무릅쓰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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