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연 Dec 05. 2019

(핀란드 일지) Finland - Tampere

살짝 발을 담갔을 뿐



겨울의 나라 핀란드도 여름엔 더운가 보다.

그늘에 있으면 덥지 않지만 일주일 즈음은 가만히 있어도 버릇처럼

덥다, 아후 더워, 덥네, 후아. 가 저절도 뱉어진다.

처음 2주는 달달 떨릴 정도로 춥더니 갑자기 10도가량 올라 여름이 되었다.

8월은 더 더울까? 염려가 될 정도로 뜨겁다.

그래도 한국이나 동남아처럼 습도가 높지 않아서인지 한국보다 온도가 높다는데 살만하다.

아니. 살만한 정도가 아니라 1년 중 7, 8월 두 달은 꼭 핀란드에서 살면 좋겠다는 말을 하루에 몇 번 하는지 모른다.

반면 매 순간 더위를 느끼고, 밤이 되어 열대야 없는 선선함이 찾아오면 

한국에 있는  그대들이 생각나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가 없다.


자꾸만 내가 먹는 그대로 먹으려는 토미 때문에 관심도 없던 비건 치즈나, 소시지 등의 가공품을 사서

그 참고 있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려 노력 중이라

이번에 소코스에서 구입해 본 비건 모차렐라치즈와 호밀빵, 토마토소스, 양송이버섯으로

피자를 만들어 소풍 도시락을 준비한다.

오호라.

비릿한 향과 맛을 뺀 완벽한 모차렐라 치즈 맛!

피자를 사랑하는 토미도 피자 사 먹을 필요가 없겠다며 미친. 맛이란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탐페레의 시간.

오늘은 피자와 샐러드 도시락을 들고 조금 멀리 피니키쪽으로 걸어가 보기로 한다.


호수와 숲의 나라라 했는데

그 호수와 숲을 찾아가려면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대중교통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자동차로만 갈 수 있는 곳들이 훨씬 많고

한참 개발 중이던 베트남의 소도시들과 산악지대보다 더 심하게, 

멀쩡한 블럭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공사판인 탐페레다.

어제는 아니었는데 오늘은 땅을 파고 있고, 어제는 조금이었는데 오늘은 한 블럭 전체를  뒤집어 놓는다.

그래서 여기저기 피해서 뚜벅이가 걸어서 파고들 수 있는 작은 녹지들을 찾아다닌 탐페레 살이었다.

그중 도심에서 녹지가 가장 많아 보이는 쪽을 오늘 찾아가는 것,

가는 길도 역시나 공사판 투성이라 쿨럭거리며 걷고

짧은 여름이라는 축제를 즐기는, 

눕거나 앉을 수 있는 곳엔 어디든 깨벗은 무리를 피해 숨어숨어 들어가니 

이젠 누울 곳이 없어 그런지 사람이 없다.


와......!

작은 흙길과 반짝이는 호수, 그리고 작은 나무숲.

목적지는 피니키의 끝까지 가는 것이었지만 오늘 내가 있을 곳은 여기다.

더 넓을 수도, 더 울창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여기 이곳이면 온종일 충분하겠다.는 확실한 기분이다.

조금 있자니 사우나 배가 요란한 음악소리, 주정 소리와 함께 벌거벗고, 취한 사람들을 싣고 앞을 지나가지만

발아래 가깝고 투명한 물이 작고 큰 파도를 핑계 삼아 나를 툭 건드리고 잽싸게 도망가는 그 순간.

오직 나와 자연만이 존재하는, 

아니, 내가 자연인지 자연이 나인지 뭐라 정의 내릴 수 없는 완벽한 일체감으로 순간이 정지한다.

맛난 도시락을 보채는 토미의 말에 다시 자리로 돌아와 그렇게 우주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

그리고 멍하니 한참을 앉아 있고서야 일어나 탐페레에서의 마지막 산책을 그린다.


살짝 발이라도 담가봐야 조금은 안다.

잠깐의 '관광' 이었다면 몰랐을 이면의 모습들이 많이 슬프고, 아픈 탐페레의 월세살이였다.

이렇게 심할 수 없는 공사판, 

노인들의 80프로 이상이 무엇에 의지해서야 다닐 수 있는 모습,

술에 취해 아침부터 비틀거리고, 주정하는 사람들,

술병이 든 봉지를 안고 쓰러져있는 많은 할아버지들, 

너무 많은 소세지, 고기, 치즈, 아이스크림.....

바지와 팬티가 벗겨져도 모르고 마트를 다니는 많은 할머니들,

동남아의 그곳처럼 잘 차려입고, 잘 먹는 사람들 틈으로

위험한 곳을 다니며 공병을 얻으러 다니는 이국의 아이들.

어린아이를 제외하곤 임산부를 포함한 모든 남녀가 담배를 피우는 듯한 엄청난 흡연율.

조용히 있다가 밤새 소리 지르고, 고함지르는 많은 사람들......

나 역시 핀란드를 만나본 것이 다큐와 책등 뿐이고 

내가 겪어본 것들이 아닌 누군가가 보여주는 것들로 모습을  쌓아왔기 때문에 

그것들과 상반되는 모습에 더욱 놀란 것이리라.

다큐나 책에서 보여준 잘 편집된 핀란드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실제 모습.

비판이나 판단, 비교가 아니라 

그래서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은 핀란드의 탐페레.

매일 편견 없이, 그대로 보자. 는 것이 탐페레에서의 매일매일 마음가짐이었을 정도였다.


매일 행복하고, 시원하고, 즐거웠던 만큼 

매일 가슴 아프고, 걱정되고, 안타깝고, 아팠다.


그래도

그래도.

살짝 스쳐가는 무지렁이 이방인이 보는 것과는 달리

그들 모두 완벽하게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럼 나도 무척 행복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핀란드 일지) Finland - Tamper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