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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Dec 27. 2019

(핀란드 일지) Finland - Helsinki

완벽한 관광객



2019.08.06


탐페레에서도, 여기 헬싱키에서도 이글 거리는 열정으로 가장 저렴한 맥주를 찾아냈다.

헬싱키 월세살이 일주일이 지나고 있는 시점.

매일 그 기쁨으로,  매일 그 핑계로 맥주를 신나게 흡입 중이다.

(물론 '신나게'라고 해도 매우 절제와 자제가 요구되는 인내심의 연속인 맥주 타임임에는 분명하다!)

사랑하는 대만과 베트남에서는 무진장  맛나는 맥주를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핀란드에서는 지금껏 아무리 싸구려 맥주를 마셔도 맛없는 맥주가 없다.

물가가 비싸다 비싸다 해도 한국의 국산 맥주나 수입 맥주 등과 비교해 봐도 

가격과 맛 면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다. 수질이 좋아 그런 건지 뭔지. 

게다가 빤트로 병을 바꾸면 공돈이 생긴 것 같은 기분까지 드니 원...!

(그걸로 또 맥주를 사 먹으니 한국의 맥주 값보다 저렴해진다. 허허허)

덕분에 오늘은 살짝의 숙취로 인해 일찍부터 아침 산책을 나서자! 싶어

아침 바나나를 싸 들고 눈곱도 떼지 않고 당당하게 동네 녹지 산책을 하자며 나선다.


해변을 따라 걷다가 우연히 빠진 길에 오르간 연주를 하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교회도 만나고

멋스러운 건축과 공사판의 풍경에 빈티지 트램이 등장하여 시대를 거스르는 듯한 순간도 만나고

그냥 감탄이 절로 나오는 건물들이 불쑥 등장해서 눈길을 사로잡아 넋을 잃고 걷다가 보니

갑자기 사람들이 뭉텅이로 모여있는 것이 많이 보인다.

다큐에서나 보던, 개 만한 갈매기가 밥을 낚아채던 카우파토리다.

탐페레와 똑같은 품목들을 팔고 있지만 여기는 공예품들도 팔고, 공장 물건도 팔고 규모가 꽤 있다.

터줏대감 갈매기들은 인종을 가리지 않고 차별 없이 음식을 탈취하고

차종을 가리지 않고 차별 없이 차 위를 한 마리에 한자리씩 선점하여 여유를 부리고 있다.

탈린에서부터 갈매기를 보았으니 아직 3달도 채 안 된 시간을 만나왔지만

볼 때마다 정말 귀엽고, 즐겁다.

어떤 점이 딱히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유쾌한 하얀 친구다.


시장이라 사람이 많겠다 싶은데 유난히 바글바글.

고개를 조금 더 들어 멀리 시선을 두니 다큐와 책등에서 보았던 전부가 그 동선에 모여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많고 관광지를 일부러 찾아다니는 것이 나의 여행과 거리가 있지만

이렇게 종종 얻어걸릴 때에는 그대로 즐겁게 만끽하는 것이 또 즐거움이다.

오호!

저것도, 저것도, 저것도 다 저기 모여있네?

좋아, 토미.

오늘 우리 완벽한 '관광객' 이 되어볼까?

잔뜩 멋을 부리고 어마어마한 관광지를 누비는 사람들 속에 

추레한 이방인 둘이 헐렁헐렁 추리닝을 입고, 바나나가 든 에코백을 덜렁덜렁 들고 발길 닫는 대로 뚜벅인다.

정말이다.

정말 다큐에서 본 것들은 다 모여있는 듯하다.

시장의 정면에서 정교회 성당이, 그 옆은 대성당, 그리고 바로 옆에는 찜해 놓았던 국립 도서관도 붙어 있고

무료로 둘러볼 수 있는 헬싱키 박물관도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좋은 동선에 관광지가 쭉 모여 있는 곳을 본 적도 처음이고,

그 유명하다는 관광지들을 다 둘러본 것도 여행 인생 이래 처음인 듯하다.

그런 것이 관심 밖이라 즐거울 것이다 말 것이다.라는 개념 분류 자체가 없던 개념인데

고풍스럽고, 이국적인 느낌이 많이 없는 핀란드에서

이런 건물들이 공간을 쭉 병풍처럼 둘러 만들어내는 묘하고 아름다운 분위기가

대형 관광버스와 단체 관광객들까지도 에워싸

통틀어 활기차고, 덩달아 자꾸 걷고 보고 싶어지는 마술을 부리는 것 같다.


기분이다!

핀란드에서의 첫 외식을 하자 토미.

그렇다. 우리는 핀란드에 와서 외식을 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먹고 싶은 걸 맘껏 먹게 해주고픈 마음이야 늘 굴뚝같았지만 늘 나와 같은 식단을 하고 있는 토미를 위해

가장 합리적이고, 지겹도록 보이는 스시 뷔페가 아닌 곳을 나름 뒤져보다

'Caverna'  라는 곳을 찾았다.

그런 곳에 가면 내가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토미가 괜찮다고 하지만

누구에게도 강요도, 권유도 하지 않는 나의 식생활을 발맞추려고 하는 토미가 항상 걱정이라

내가 육식을 해서 먹일 수는 없으니 한국에서도 이렇게 종종 하던 우리의 외식 방식으로

핀란드의 첫 외식으로 선택한다.

해저 동굴 콘셉트의 약간 유치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그렇지만 스시나 그런 뷔페도 10~14유로 정도 한다던데 

저녁에는 40유로 가까이한다던 식당의 런치 뷔페 가격은 13.9유로.

내가 먹은 것은 토마토, 오이, 오이 넣은 김밥, 감자 정도였지만

토미가 이것저것 즐기며 먹는 것을 보니 걱정이 되면서도 안쓰럽고, 좋다.


밖에서 처음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나니 며칠 짬을 내어 종일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여행자의 느낌이

반갑고 뭉실 마음도 들뜬다.

다시 신나게 뚜벅이다가 음악 소리에 이끌려 따라가 보니

작은 무대에서 라이브 콘서트 진행 준비를 하고 있다.

오호! 운도 좋아라!

숙취 덕분에 뚜벅이다 얻어걸려 활기 넘치는 도시 관광을 하고, 첫 외식을 한 것도 모자라

라이브 공연을 보다니...!

나름 드러머와 베이시스트인 녀석 둘은 밴드 생활을 그리워하고 반가워하며

오락가락하는 비와 쨍하게 찌르는 늦은 오후의 햇살과 칼칼하고 시원한 3인조의 라이브 공연을

온 마음을 다해 즐긴다.


살고 싶어 일상의 삶을 찾아 떠나와서 몸이 편한 일상에 묻어가고 있지만

지칠 때까지 걷고 싶은 뚜벅이의 마음이 다리와 가슴을 간질간질하게 하는 순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마음을 만나고 보니

이제 숨을 잘 쉬고 있구나. 그러니 다시 놀이라는 것이 고개를 들 수 있구나, 싶다.

물 밖에서 죽을 듯이 아가미를 팔딱 거리다가 물에 뛰어들어 살아난 바다 동물의 마음일 것이다.

아직 답답한 마음도, 불안한 마음도, 긴장되는 마음도, 걱정이 만성이 된 지친 마음도 

모두 이젠 그렇지 않아졌어, 모두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누군가의 이야기들처럼 그렇지 않지만

삶은 늘 그런 마음들이 끊임없이 오고 감의 연속이니

그 마음도, 또 오늘처럼 평생 걱정이란 것 없이 살아온 것 같이 아이 같은 마음도 모두 내 마음이니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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