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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Dec 21. 2019

(핀란드 일지) Finland - Helsinki

퇴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집에, 하루는 종일 무작정 싸돌아다니는 것이 헬싱키에서의 일과.

오늘은 집에서 바다를 끼고, 녹지를 끼고, 집 방향에서  왼쪽으로만 쭉 걸어 볼 생각이다.


헬싱키의 녹지 표시는 꽤 믿을만하다.

탐페레와 마찬가지로 헬싱키도 보이는 길들이 족족 공사판인데

집 주변에도 이미  꽤 큰 공사판들이 있고 오늘의 첫 발길 조선소를 끼고 지나는 해안선에는 

여기 사람들 어찌 사냐... 싶을 만큼 초대형 공사판으로 길 전체가 마비.

다행히 주말이라 공사를 쉬는 덕분에 지나갈 수 있었지 아니었으면 기겁해서 뒤로 도망쳤을 것이 분명하다.

얻어걸린 날이 주말이라 감사할 따름.


여전히 가득한데 여전히 만들어대는, 생전 처음 보는 조선소를 지나 희한한 배들 구경도 하고

야외 벼룩시장과 재래시장도 슬쩍 구경하고

아름답고 소박하게 꾸며진 정교회 묘지 터를 끼고 도니

작은 언덕임에도 큰 바위가 자리 잡힌, 마치 세상의 중심인 것 같은  자연도 만난다.

헬싱키의 아름다운 면은 분명 난리 통임에도 다 밀어버리지 않고 많이 남겨 놓은 이런 자연의 모습이다.

돌이 좋고, 바위가 좋고, 나무가 좋고, 사람 적음이 좋다.

조금 더 조금 더 오르니 한눈에 알아본, 여행책에서 지겹게 보이던 실물이 더  귀여운 카페를 만나고

또 조금 걸으니 너무 유명한 시벨리우스 공원과 어마어마한 관광객 무리를 얻어걸려 만난다.

매일 무료 개방인 트램 박물관에서 과거에도 여전했던 동물의 이용 흔적을 보고

다시 무작정 녹지를 따라 뚜벅거리니 큰 호수와 공원을 자유롭게 오가며

먹고 똥 싸고 자고 헤엄치는 '검은발개똥오리' 떼를 만나서 한참을 부러워한다.

오늘은 술을 먹지 않기로 했지만

근처 ALEPA 에서 가장 싼 맥주를 사들고 이 멋진 곳, 멋진 시간에 머물 수 있음을 건배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살짝 매일 긴장이 되는 길이다.

유독 이 길에는 주정 부리는 사람도, 경찰에 붙잡혀 가는 사람도, 응급차에 실려가는 사람도

담배 피우는 사람도 많다.

아차.

오늘도 술집과 마트 사이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빨리 지나치고 싶다는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

바닥을 보고 지나치며 흘깃 보니 웬 할머니가 바닥에 앉아 계시는데 

힘겹게 얼핏 보니 발에 피가 나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는 또 자리 잡고 앉아 대놓고 구걸을  하고

우리에게 공병을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지나쳐왔다. 

모두...

난 분명 공병을 줄 수도 있었고, 구걸하는 사람에게 뭔가 필요한 것을 줄 수도 있었고

할머니의 피를 닦아줄 수도 있었다.

파리, 모기, 애벌레, 고양이, 강아지, 하루살이, 진드기를 대하는 마음으로 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지나쳐왔다.


지금 이 많은 인간들이 가만히 있는 걸 보니 벌써 응급차를 부르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가?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괜히 돕다가 되려 곤란해지면 어쩌지?

내가 구급차를 부를까?

내가 그 말을 구사할 수 있을까?

왜 다들 구경만 하고 있지?

1~2초의 찰나에 그런 긴 핑계를 대고 다시 뒤 돌아가 보니 

어떤 아주머니가 혼자 할머니의 발에 양말을 신겨드리며 부축하려 하고 계신다.

할머니가  몸도 못 가눌 정도로 길에서 술을 드시다가  넘어져서 발이 다친 것 같다.

아주 온화한 표정으로 침착하게 할머니를 부축하는 아주머니.

신을 섬기거나, 마음공부를 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하는 모든 것이 필요 없는 존재였다.


힘든 이가 있거나, 불합리한 것이 있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던 어린 날의 나는 지금 없다.

사람을 좋아했던 어린 나는 없다.

인간 혐오자가 된 것 같은 나의 인간에 대한 반응에 놀랄 때가 종종 있다.

단지 쿰쿰한  은둔자처럼 사람을 되도록 피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

너무 오랜 시간을 잔뜩 웅크린 채로 그렇게 지내다 오늘 타인의 고통을 마주했을 때 

영리한 변명만 늘어놓는 내가 되었다는 것이 놀라웠고, 또 그 자책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너무 어리석고, 변명할 줄 모르고 뛰어들던  그냥 바보였던 때가 멀게 느껴진다.

나비가 퇴화한 듯 다시 스스로 고치를 만들어 꽁꽁 묶고 들어가

단단하게, 점점 더 견고하게 만든 나의 에고 안에서

내 고통이 제발  빨리 없어지기를 바라고,  불편하고 싶지 않은,

스스로도 아직까지 구해줄 수 없고, 편안하게 해 줄 수 없는

 단단히 웅크린 겁쟁이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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