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연 Jan 14. 2020

(핀란드 일지) Finland - Helsinki

섬에 살고 싶다




요 며칠은 볼일이 있어 칼리오 지역을 자주 가고, 중앙역 등 중심지로 매일 나갔더니

질린다. 질려버렸다.

자연이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의 사람 사는 곳은 죄다 공사 중인 헬싱키.

탐페레도 그 부분이 정말 놀라웠는데 헬싱키는 내 기준 진정 재앙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공사 먼지를 너무도 먹어버린 탓에 부실한 기관지가 악을 쓰고 버티다 콧물, 눈물, 간지럼 범벅이 되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헬싱키를 방문하는 방법처럼 스톱오버나 잠깐의 여행으로 중심지역만 방문했더라면

절대,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최악의 나라이자 도시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나름의 긴 여행 살이, 월세살이를 할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그래서 오늘은 또 지도상의 녹지를  찾아 나선다.

자주 다니는 길에서 좀 더 올라 걸어서 1시간 10분쯤 걸릴 예정인 Seurasaari.

다행히 자주 다니는 산책로에서 좀 더 올라가면 되는 곳이고, 

이제는 도로와 공사판을 쏙쏙 피해 다니는 루트는 만들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도로와 공사판은 피할 수 없겠지만.

섬 전체가  Open Air Museum 이라는  Seurasaa. 기대된다.

언제나처럼 아침 일찍 나서면 바나나 도시락을 준비하고, 오늘은 맛나는 수오미 감자도 잔뜩 쪄서

도시락으로 준비한다.


언제나 다니는 길.

그래도 언제나 다르다.

매일 가는 길에 만나는 검은발개똥오리의 횡단보도 횡단도 보고, 

녀석들이 싸놓은 뜨끈뜨끈한 똥 폭탄도 만나고

오늘은 조금 더 센 바람, 더 서늘한 공기.

모든 것이 어제와 또 다르다.

익숙한 길이 끝나고 이제 40여 분은 새로 만나는 길.

헬싱키의 공사 사정에 식겁하는 나는 큰 도로와 큰 트럭을 보고 이내 인상이 구겨져 버리지만

토미가 다시 찾아 준 새로운 작은 길로 들어서니 신세계가 펼쳐져 있다.

이런 곳에 이런 자연이 그대로 있다는 것이 놀라울 만큼

검은 바위 절벽, 바위 산과 바다.

그 길을 천천히 만나며 지나가니 이번엔 호수처럼 작게 보이는 바다와 그 곁에 작고 긴 숲이 이어진다.

이 길로만 쭉 가면 바로 섬에 도착이다.

오늘도 토미 덕분에 도로를 피해 섬으로 올 수 있었다.

언제나 고마운 토미.  

한결같은 이런 배려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갖게 한다.


섬을 잇는 다리부터 우리의 '검은발개똥오리' 와 온갖 하늘의 친구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핀란드의 옛 건물을 보존해 놓았다는 이 야외 박물관은 온통 나무와 구름과 바람과 나무집이 가득하다.

못 없이 나무의 이음새만 이용해서 엮은 단순하고 소박한 나무집.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 섬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건재한 건물들이다.

훼손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과 인간이 만든 오래되고 단순한 것들이 만들어 내는 느낌은

편안하고, 부드럽고, 자꾸만 동경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있다.

한 시대가 아니라 아주 더 오래전부터 조금 더 근래의 건축까지, 

그리고 심지어 수십 명이 탔을 난생처음 보는 대형 선박은 동화나 만화에서 상상해 왔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아주 묘한 기분을 떠오르게 한다.

섬은 육지보다 훨씬 더 자체적이고  독자적인 환경들이 만들어진다.

그래서인지 나무만 해도 다큐에서만 보던 마다가스카르의 나무를 보는 듯한 나무들이 가득하고

교회와 집과 풍차와 온갖 건물들이 갖춰진 마을인데 눈을 돌려 보면 사방이 바다로 연결된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안의 정체 모를 설치물.

뭘까? 대형 가로등이었을까? 싶었던 것은 공중전화 부스다.

누군가의 사랑, 화, 슬픔, 그리움이 비밀스레 오고 갔을 그 작은 초록의 부스는  온갖 상상을 하기에

충분하고 아름답다.

나무 그늘 속 나무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바나나를 먹으며 바라본 맞은편의 육지와 다른 섬.

나에게는 신비롭고, 아름답게만 보이는 늘 동경의 대상인  '섬'에서 내내 살던 사람들은 

인간에게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자연환경을 견디며 맞은편의 육지와 또 다른 섬을 바라보며 그곳을 동경했을까?


해가 쨍쨍하다.

해 취약자가 나무 밑을 헤매다 보니 나온 해변.

초입부터 나와 같은 관광객으로 온 줄 알았던, 아들인 듯한 아이와 함께 온 아주머니는

바다를 보더니 보는 사람 아랑곳 않고 훌렁훌렁 벗더니 그냥 뛰어든다.

아들은 주위를 보며 주저하고 발만 첨벙 대는데 엄마는 훌렁훌렁 첨벙.

순식간이다.

그리고 돌아보니 이미 훌렁 벗은 사람이 벗고 해를 즐기고 있다.

아. 여기 핀란드였지...!

여기저기 해가 나는 곳이면 훌렁훌렁 벗어재끼는 이 사람들이 다른 문화에 굳어진 나는 적응되지 않지만

이들의 해에 대한 갈망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래도 홀랑 벗는 생물이 자연 풍경을 가리는 것이 싫어 좋은 전망을 찾아 멍하니 즐기는데

바람이 갑자기 세진다.

그냥 센 정도가 아니라 절벽 위 바위에서 휘청휘청 거려 자칫하면 빠질 수 있을 듯한 바람이다.

그게 그런데. 그렇게 좋다.

조금 안전하게 한걸음 안으로 들어와 거센 바람과 맞은편에 보이는 작은 섬들을 마주하고

이 거센 파도의 물살을 타며 자연스럽게 먹이 활동을 하는 오리를 바라보니

자꾸 욕심이 생긴다.


여름엔 꼭 핀란드에 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에 잠시라도 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핀란드 일지) Finland - Helsink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