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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Sep 02. 2020

(Macedonia Ohrid)
 오흐리드는 수박맛집

마케도니아 일지




2019.09.07



역시 이사 후엔 생필품, 식자재 조사가 가장 중요한 일.

눈에는 예쁘지만 매연 공장 똥차와 줄줄이 담배 연기를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공복에 동네 구석구석을 뒤지도 다닌 며칠이다.

스코페처럼 복합몰이나 많은 품목이 있는 대형 마트들이 없기 때문에 작은 가게들을 하나하나 찾아야 하지만

어릴 적 한국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친근하고 정겹다.

스코페에서는 널렸는데 여기에선 보기 힘든 '미스터 팍' 라면, 그리고 놀랍게도 마트마다

우유, 계란, 심지어 팜유까지 없는 과자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이가 녹아내릴 듯 달지만!)

그나마 유일하게 믿고 쓸만한 프로쉬 세제, 현미도 있다.

그런데 녹색 잎채소가 찾기 힘들다.

재래시장을 뒤져서야 겨우 고무줄로 묶어 놓은 근대 종류와 허브 잎 종류만 찾을 수 있다.

철이 아닌 건지, 잘 먹지 않는 건지.

한국에서는 철 아닌 잎채소를 사계절 먹다 보니 제철 음식의 개념이 희미해져서 그런 건지

당황스럽고, 잎채소를 먹을 수 없음이 처음이라 조금 걱정이다.

김도 이제 한 봉밖에 남지 않았고, 된장도 한 병뿐이라 한국의 한살림이 그리운데

유기농 마트에 가 보니 일본산 미소된장이 있어 패스, 나머지는 향신료, 약간의 곡류 들뿐이다.

그래도 호박, 양송이버섯(아.... 느타리, 팽이, 새송이버섯의 식감이 너무 그립다.)

가지, 오이, 그리고 가끔 양상추가 들어와서 돌려가며 내내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할 뿐!

그것도 탈린, 핀란드의 절반 가격에!

한 끼에 양송이 250g 한 팩을 썼었는데 여긴 양송이 한 팩이 600g.

유기농 현미는 아니지만 일반 현미도 가격이 저렴해지니 밥 양도 배로 들어 한 끼에 완벽한 빵빵이가 된다.

핀란드가 서울 같았다면 스코페와 오흐리드는 베트남 물가처럼 느껴진다.

핀란드의 과일보다 맛은 있지만 과일의 당도가 많이 떨어지는 편인데 수박이 예술이다.

떠나서 여태 먹은 수박들은 비교도 안 될 만큼.

한국의 유기농 수박과 똑같은 맛에 가격은 큰 것 한 통이면 1000원 정도!

쩍 잘라 푹! 퍼먹으면 어떤 것도 부러울 것 없고, 수박 속에 빠지고 싶은 맛이다.

너무나도 작은 동네에서 온통 가게들을 뒤지고, 동네를 탐색하고, 올드타운, 호숫가를 매일 걷고,

절벽 산책로까지 다니고, 발목이 꺾일 듯 울퉁불퉁한 좁고 작은 골목골목을 누빈다.

그대로의 자연과 오래된 인간의 역사의 어우러짐이 과하지 않고, 과시되지 않고, 그렇다고 초라하지 않고

소박하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풍경.

참 아름다운 풍경, 참 매연으로 가득한 베트남 같은 매캐함. 참 가득한 피할 수 없는 담배연기.

토미의 생일도 맞이했고, 곧 의미 없는 내 생일도 지나

그 모두와 자연스럽게 어울려 최소 두 달을 지내야 할 오흐리드의 요소들이다.

많은 것들을 피하고자 여름이 지나 도착하는 일정을 잡았지만

베트남의 냐짱처럼 좋아하지 않는 휴양지의 모습이 아직은 가득해서 답답하고, 마음 아프고, 안타까운 느낌이 많다.

이런 곳에 내 발로 왔으니 모두 그냥 보고, 그대로 함께 지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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