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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Sep 29. 2020

(Macedonia Ohrid)
 석양과 개밭

마케도니아 일지





2019.09.10



불편한 낯선 집에서 내가 찾고 위로받는 기쁨은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색과 바람을 느끼고 

동물 친구들을 보는 것.

여전히 6시 전에는 기상하는 덕에 집에만 있는 날에도 새벽의 풍경, 낮의 풍경, 저녁의 풍경, 

그리고 밤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전망이 없으면 감옥에 갇힌 듯한 나이기에 서울에서도 옥탑일지언정 항상 높은 곳, 

전망이 있는 곳을 찾아 살았지만

한국 주택의 창에 있는 모기장과 건물이 자연보다 높은 풍경은 금세 싫증 나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나쁜 공기 덕에 꽁꽁 닫고, 그나마 열었을 때 구름과 하늘빛까지 삼킨 누런 배경을 보고 살다가 떠나오니

이젠 그 길었던 시간이 오히려 더 믿을 수 없는 꿈같다.

다시 돌아야 한다는 사실도 꿈같다.


마케도니아엔 혼자 돌아다니는 개와 고양이가 많다.

여기 오흐리드 월세집 아파트 주변만 해도 개밭. 호숫가, 구시가를 가도 개밭이다.

이젠 매일 창밖, 문밖에서 만날 수 있는 개밭의 멍돌이들 덕에 나는 무척이나 행복하다.

멍돌이들도 굶지 않고, 인간들에게 괴롭힘 당하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고 행복했으면...


탈린의 올드타운을 거의 매일 같이 만났듯 멀리 명소인 성벽이 집에서 잘 보인다.

하루 걸러서 호수 왼쪽과 오른쪽 까네오 쪽으로 다니다가 오늘은 성벽 쪽으로 올라가 보기로 한다.

팔자걸음을 많이 고쳤는데 내 걸음이 문제인지, 오래된 골목의 돌길이 심한 건지 발목을 수도 없이 꺾이며

굽이 올라간 성벽.

쨍쨍함에 지치고 성벽 등에 관심이 없어 입장료가 있는 안을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집의 전망에서, 멀리서 보는 느낌이 왠지 더 좋다.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꼭 잘 알지 않아도 반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성이나 거창한 명소보다 자연스런 발걸음에서 만나는 일상의 모습에 아름다움이 있다.


매일 구시가 쪽을 거쳐 까네오성당과 산길을 올라 다녔는데 성벽에서 갑자기 펼쳐진 손타지 않은 숲길을 지나니

까네오로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역시 작은 동네라 돌고 돌면 다 이어져 있다.

쨍해서 힘들었던 성벽 오름길이 까네오 곁으로 깔리고 있는 석양을 보며 멍하니 서 있는 순간.

행복하고, 벅차다.


나에게 큰 행복을 주는 모든 고마운 존재들이

모든 것들과 상관없이 늘, 온전히, 충만하게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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