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연 Nov 11. 2020

(Macedonia Ohrid)
 존재 자체만으로

마케도니아 일지

마케도니아 일지



2019.09.12


오래 잠을 자지 못한 탓인지  기분이 개운하지 않은 새벽.

나가서 걷고 싶지만 많은 사람과 많은 매연과 많은 담배 냄새가 싫어 토미의 아침 일이 없는 주말엔

6시부터 까네오  위로 나 있는 길을 산책하기로 생각했었다.

오늘 바로 나가야지. 몽롱한 마음도 깨울 겸.

이 새벽에 걸으면 마음이 좋아질 거야.


5시 반만 해도 캄캄하던 하늘이 옷을 갈아입고, 이것저것 하는 30분 사이에 그새 밝아진다.

내내 캄캄했으면 좋겠다. 

이곳엔 비는 왜 이리도 오지 않는지...

비가 왕창 내렸으면 좋겠다.

사람이 많이 없었으면 좋겠다.

내내 마음이 심술이다.

밝아지는 걸 보니 갑자기 나가기 싫어지지만 그냥 나선다.

다행히 사람 하나 없는 관광 도시의 길가.

관광객이 많은 낮과 저녁의 까네오에서도 사람이 없는 숲길 산책로에 접어드니 

우리처럼 조용한 푸른 숲 속의 아침을 누리는 사람이 가끔 보인다.

한 여행객이 큰 검은 멍돌이와 함께 걸어오고 있다.

와. 좋겠다. 

관광객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개랑 같이 왔나?

그런데 저만치 내려가더니 개만 다시 혼자 올라와 내 곁으로 온다.

멍돌아. 너 저 사람이랑 가족 아니었어?

가까이서 보니 호수에서 수영을 한 듯 몸이 잔뜩 젖어서 물기로 반짝이는 멍돌이가 나를 쳐다보더니 

내 곁에서 걷는다.

아. 아니었구나.

너도 오흐리드 개밭의 행복한 멍돌이구나!

너무나도 순하고 예쁜 여느 오흐리드 개와 마찬가지로 일어나면 내 키는  족히 될 법한 멍돌이가

작은 강아지처럼 졸졸졸 내 곁에 머문다.

아까 그 여행객에게서 처럼 조금 있다가 다시 돌아가겠지.  싶었는데

1시간 내내 내 곁이다.


이 행복한 느낌 얼마 만일까.

곁에서 걸음에 아침의 마음과 기분은 모두 솜털처럼 살랑거리고, 마음은 두부처럼 말랑거린다.

그 사랑스런 모습을 바라보니 갑자기 눈물이 터진다.

절벽과 호수와 하늘이 아름다운 꼭대기에서  울어버린다.

내 사랑 똥개 짜빠리가 늘 이렇게 곁에 있었음을 이 사랑스러운 생물에게서 다시금 벅차게 느낀 것 같다.

산책하는 내내 내 곁을 지키고, 나를 살피고 배려하며 놀던 나의 똥개.

몇 년이 지났지만 항상 마음속에 품고 다니는 나의 똥개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내 곁에 늘 있었음을,

어떤 모습으로라도 늘 그 속에 그 사랑스런 존재가 깃들어 있음을 벅차게 느낀다.

이제 사람이 많아졌음에도 다른 사람에게 가지 않고 

내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내 곁에서 걷다가 이제 그만 안녕이겠지. 싶은 때에도 함께 있더니 

구시가까지 와서야 안녕. 한다.


너는 사람을 좋아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개. 의 사랑스러운 성격으로 잠시 만나 동행한 이유였겠지만

나에게 너와의 만남은 아주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깊숙이 스며들어 잊을 수 없는 

빈틈없이 꽉한 행복이야.

고마워, 오흐리드의 검은 멍돌이.

고마워, 나의 똥개 짜파리.

늘 사랑해. 나의 똥개 짜파리.
















매거진의 이전글 (Macedonia Ohrid)  석양과 개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