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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Apr 19. 2021

(Portugal Porto)
고구마를 주세요

포르투갈 일지





2019.12.11


오늘은 몸이 좋지 않아 집에서 조금 쉬고 싶지만

나가라고 연신 뚱땅 거리는 감사한 공사 소리와 진동 덕분에 

눈곱만 떼고 주섬주섬 나선다.

하늘이 파랗다.

포르투 도착하여 처음 만난 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빛,  그 사이 유유히 둥둥거리는  하얗고 귀여운 구름!

길 강아지 길고양이조차도 보기 어려운 포르투다.

간만에 쨍한 날씨 덕분인지 차 위에서 늘어지게 걸쭉한 침을 흘리며 자는 녀석, 

내 발걸음을 붙잡고 부비적대는 녀석, 가파르고 좁은 계단에서 천하태평으로 자는 녀석

돌담길에서 잠시 쉬어가는 녀석들을 만난다.


매일 창가에, 외벽에  힘겹게 매달려 있는 산타 인형들을 보며 즐겁곤 하는데 

오늘은 따뜻한 체온을 가진 그런 녀석들이 곳곳에서 기쁨을 전달해준다.

수많은 인간, 빼곡한 건물을 빼고 동물과 식물 보기가 어려운 포르투.

꼭 부산 같아 정겹고 친근하고 아름답지만 곧 무엇 하나 눈과 마음 한켠에 답답함과 허전함이 남는 

골목골목.

도심을 누비다 그 발걸음에 얻어걸린 나무 몇 그루에 행복하다.


토미는 이제 공항 라운지에서를 빼고 완전히 나와 같은 음식만 먹고 있다.

처음 데려 간 다테라. 음식이 깨나 입맛에 맞았는지 포르투에 도착한 것이 2주 정도인데 

다테라만 벌써 4번째.

본의 아니게 지점별 도장 깨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토미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이런 음식들은 경험상 한 번인 나는 지난 한번 이후 이미 질려있다.

나와 같은 식생활을 하려 노력하는 토미와 늘 붙어 있는 생활로 

온갖 비건 가공품에 도전하고, 먹고, 그리고 어렵지 않게 구해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하지만 그런 식당에 깨끗한 유기농 생과일, 드레싱 소금 오일 설탕 없는 생채소, 잘 지은 밥이나 통밀빵, 

그냥 굽거나 찐 고구마나 감자를 주면 좋겠다.

'Vegan' 이라고 이름 붙여진 음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콩 단백, 밀던 백 등으로 만든 

소세지, 버거, 피자, 도넛, 케이크, 파스타 등의 요리에 제한되어 있다.

서양 식사니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하나. 

보편적, 이라는 음식이  식물성으로 만들어졌다.라는 명분과 사실을 감탄하고 놀라워하며 

누가 더 똑같이 그 맛을 재현하고, 가공하는지 서로 내기하면서 만들고 그 이름을 먹는 듯하다.

매우 중요한 방향이기도, 어떤 이들에게는 매우 절실히 필요한 방향이다.

지금 토미의 경우처럼.

다만 나는 단순한 것을 원할 뿐이다.

아무리 먹고픈 것 먹으라. 얘기해도  보기만 하고 참는 토미. 

저러다 병나지. 싶어 

무려 프란세지냐 비건 버전까지 먹는다. 거대 부호처럼 생맥주도 시켜서.

빵과 콩고기, 소세지, 밀고기 빵, 소스를 쌓아 올린 음식을 먹고 있자니 

가상현실 속 음식을 먹고 있는 기분.

소꿉놀이 음식이다.

진짜 음식. 은 어디 있지? 

이게 전통음식이라고 하는데 애초 포장마차 아저씨 손님 입맛에는 고구마와 김장김치가 간절하다. 

역시나 토미는 최근 먹은 것 중 가장 맛나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신 감탄하며 흡입한다.

귀여운 녀석. 

비아나두 까스텔로. 로 이사하면 그곳엔 다테라가 없으니 

맛이 식당보다 떨어지더라도 한번 만들어야겠다.


자연스러운 식물식, 을 먹을 기회는 이곳에서도 집에서 뿐이다.

과일 하나 없이 소스에 절여진 채소와 양념에 제맛이 가려진 채소, 기름진 빵, 

짜서 호기심으로 한 점 말고는 먹을 수 없는 가짜 고기 절임.

내가 뭐라고, 이런 비건 음식.이라는 것을 밖에서 먹을 때마다 그냥 그대로의 음식 한 그릇 만들어서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주고 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그래도 그래도.

뚜벅이다 멀지 않은 곳을 찾아 끼니를 해결할 수 있고,

육식을 하지 않으려 하는, 빵과 서양식 와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토미와  함께 맛있게, 배부르게 

한 끼 즐길 수 있는 곳이기에 감사한 건 여전하다.

그래도 그래도.

이제 그만 먹고 싶다오...

매일 한국 포근하고 달콤한 밤고구마와 달랏의 푸석하고 설탕 같은 밤고구마, 

대만의 쫀득한 꿀이 넘치는 고구마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다.

여전히 한국이 그리운 건 요런 음식뿐이라니...

돌아갈 날이 정해져 아쉽고, 조금 두려우면서도 고구마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살짝 들뜨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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