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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Oct 22. 2019

(아직은) 초록별 일지

(Estonia-Tallinn) 자연 소유주




매일 대체로 정해진 일과.

창을 활짝 열고 하늘과 구름과 나무와 안녕!

마당의 냥돌이와 안녕! (물론 나 혼자 안녕. 녀석, 시크하긴...)

토미가 일을 볼 동안 나는 과일을 씻어 아침 먹을 준비를 하고

함께 108배 절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한다.

다음 내가 그리고, 쓸 동안 토미가 수건 손빨래를 하고, 점심 먹을 샐러드 채소를 준비.

토미가 다시 일을 볼 동안 나는 밥을 솥돌이에게 맡기고, 채소를 썰어서 반찬 준비를 한다.

밥 냄새, 된장국 냄새가 솔솔 풍기면 어설프게 자리 잡고 앉아

불편하고 단출하지만 맛나고 소박하고 풍성한 점심 식사를 한다.

방을 닦고, 빨래를 하고, 다시 둘이 볼 일을 보고

가끔 영화 한 편을 보고

해의 기세가 그나마 꺾일 시간인 5시쯤 집을 나서 그냥 걷다가 장을 봐서 들어온다.

오늘도 창밖의 고마운, 늘 같지 않은 모습의 친구들에게 안녕!

오늘도 쓱 보고 마는 귀여운 냥돌이 자식. 너도 안녕!

오늘은 마땅한 통도 없고, 유리 보관 용기도 없어서 미뤄뒀던

겉절이 한 통을 만들어 배부르게 먹고,

아프고 정신없는 이동 통에 잔뜩 밀린 그림도 그리고 나서

탈린 항구에 가기로 한다.

올드타운을 거쳐서 대로변을 조금만 걸으니 나타난 항구.

핀란드로 이동할 때 올 곳이기도 했고, 바다를 좋아하는 토미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바다가 있으면 온통 파란 풍경과 맛난 맥주가 노점에 있기 마련이라는 

꿍꿍이를 안고 도착한 탈린 하버.

파란색은 이런 거야! 

하늘색은 이런 거라고! 

에헴!

잔뜩 기운 좋은 하늘빛에 이미 기분이 잔뜩 부풀었는데 초입부터 개인 요트 같은 것들이 정박해 있다.

오호

거대 부호들의 요트로구먼!

에어비앤비도 요트 집 렌트가 있더라 토미.

응?

근데 왜 막혔지?

저긴 정박해 놓은 곳이고 저기 너머로 가면 바다가 있을 거야!

발트해 말이야!

오호 오호

끝없이 막혔다.

시장이라고 이름 붙인 작은 실내 시장이 있었고, 터미널이 있었고, 카고가 있었고, 쇼핑몰이 있었고, 

주차장이 있었고......

그리고 바다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은 아무 곳도 없다.

모두 사유지이고, 시멘트로 막아놓아 관계자만 오갈 수 있는 것 같다.

저기까지만 더 가보자.

그래. 아무리 그래도 항구인데 이렇게 다 막아만 놓았을까?

그럴 수도 있다.

지금까지 보아 온 에스토니아 탈린의 인상은 그랬다.

골목골목을 들어가고 싶어도 다 크게 울타리가 막고 있고, 

큰 도로만, 큰 길만 걸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타이베이와 베트남의 현지인과 가까운 집과 상가 옆 골목골목을 누비며 

조용히 그들의 숨결을 조금 가까이 느껴보는 것이 뚜벅이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는데 

여기는 친절하고, 미소 짓지만 당최 곁을 주지 않는 냥돌이 같다.

주변을 더 걸어봐도 바다 곁을 허락하지 않는다.

실망스럽고, 절망스럽다.

누구의 것이기에 그냥 볼 수도 없는 것인가?

페리를 타면 그때야 볼 수 있는 것인가?

도로와 시멘트 바닥에 나무 하나 없이 텅텅 빈 장소가 질색인 나는 더 둘러보기를 중단한다.

돌아가자 토미.

저기 잠깐 앉아서 요트 밑에 보이는 물이랑 하늘이랑 구름만 보고 가자.

구름은 예쁘다.

잠시 궁댕이를 붙였을 뿐인데 뒤며, 옆이며 담배를 단체로 피워대는 통에 

쫓겨 일어나 버린다.

젠장.

저 담배 인간들은 국가를 가리지 않고 괴롭히는구먼.

저러고 꽁초는 갈매기 주겠지.

물에 버리고선 좋다고 바다 친구 배를 갈라 신나게 구워 먹겠지.

멍충이들!!!!! 젠장!!

짜증이 솟구친다.

발걸음을 돌려 가려는데 양치기 개 만한 크고 하얀 기러기가 날아온다.

와!! 갈매기!! 이렇게 가까이에서 처음 봐.

석모도에서는 날아다니는 애들만 봤잖아!!

근데 쟤 어디 가지?

벤치에 한 가족이 피자를 먹고 있는데 그 앞에 떡하니 자리 잡고 어슬렁 거린다.

가라고 손사래쳐도 자꾸 피자를 노린다.

조금 떼어줄 만도 한데 절대 주지 않고, 눈길도 주지 않는 가족 곁에 

조금은 민망한 듯 ,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입 먹겠다는 뻔뻔함으로 주야장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에스토니아도 새에게 먹이를 주면 벌금이라고 한다지?

쟤네 터전을 다 인간이 장악하고선

 스스로 먹을 것을 찾을 힘을 길러줘야 한다는 둥, 번식을 조절해야 한다는 둥의

이유로 먹이를 줘서도 안된다니.

걸신들린 듯 먹어대고, 다 먹지도 못하고 버려대는 인간이 감히 만들어서는 안 될 법이지 않은가. 싶다.

공원에서 도시락을 먹을 때는 옆의 참새와 비둘기와 나눠먹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나도 배가 텅텅, 가진 과자 쪼가리도 없으니 저 녀석을 저렇게 두고 모른 척 갈 수밖에.

오늘은 유독 차갑게 느껴지는 에스토니아 탈린.

그래도 그 곁이 모두 바다이니 다른 방향으로 가면 좀 더 다른 면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시 탈린의 땅이 끝나는 곳에서 바다를 시원하게 정면으로 만나러 다시 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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