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몇년전 친구와 여행을 갔다. 여러번갔다.
친구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 불명확했던 그녀를 이제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한 번은 싸울 줄 알았다. 싸우지 않았다. 단지, 화가 나도 삭히고 삭히며 다시는 이 아이와 여행을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던 순간은 있었다. (웃음) 그렇게 써둔 옛 일기장을 보며 다시 상기해본다. 여행은 뭘까. 내 여행은 뭘까. 마지막 날 밤 ‘둘이어서 다행이라고.’ 내뱉었던 그 말은 나의 진심이었을까. 다행인 점도 있고 미치도록 싫은 것도 있을 것이다. 혼자였을 땐 소심했다. 하고 싶은 거도 다 하지 못하고, 여전히 수줍어했다. 특히 먹고 싶은걸 못 먹었다. 둘이 있을 땐 용기가 난다. 가고 싶은 레스토랑도 갈 수 있다. 수많은 외국인들에게 압도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와 하는 여행이 좋다. 혼자는 재미없다.
나는 누군가와 맛있게 먹는 게 중요한 사람이다. 혼자서는 뭘 먹던지 신경 쓰지 않는다. 배고픈 건 못 참지만 배부른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건... 밤문화는 즐기지 못했다. 혼자선 위험하니까. 여기선 나를 보호해줄 사람이 없다. 같이 즐거워할 사람도 없다. 그래서 즐기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래서 ‘그럼 난 누군가와 여행하는 걸 좋아한다.’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런가? 둘이 있을 땐 혼자의 시간을 죽도록 원했다. 제발 따로 다닐 수 없나 궁리만 했다. 상대를 신경 쓰지 않고 시간 제약 없이 새로운 장소를 구석구석 봤으면 좋겠다. 가이드의 설명 따위, 역사적 사실 따위 궁금하지도 않다. 여기가 맛집인지 유명한지, 다 알고 있는지 관심 없다. 누군가와 여행하는 건 성가 지고 귀찮은 일이다. 그럼 ‘나는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한다.’ 모르겠다.
여행지에서 관광객이고 싶지 않다. 그곳을 일상인 것처럼 느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여유를 가지고 급하지 않게, 체하지 않게 한 번에 느리게 천천히 온전히 내 경험으로 습득하고 싶다. 하나를 하더라도, 어설프더라도 행동을 하고 싶다. 공원을 걷는다. 잔디에 눕는다. 햇살을 느낀다. 비 오는 공원에서 밥을 먹고, 빗소리를 듣고, 커플들 사이에서 불편해하고, 음악을 듣고. 그런 게 내 여행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제발 하나님 나와 똑같은 사람을 내려주세요. (간절)
-친구-
누군가와 같이 여행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의 평소 습관과 생각이 눈에 잘 보인다. 그래서 나와 무엇이 다른지 보인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으로 사람을 평가하게 된다. 상대의 잘못되거나 모자란 점을 바로 잡아주고 싶어 진다. 좀 더 역동적인 여행을 하자고, 혹은 좀 더 좋은 것을 경험하자고 다그치고 싶다.
그런데,
친구를 욕할 필요 없다. 친구의 그릇을 판단할 필요도 없다. 과거에 친구의 그릇이 작다며 수많은 내 친구들을 판단하고, 규정짓는 짓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점점 깨닫는다. 어린 나는 나와의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몰랐다. 나와 다른 것이 상대방의 부족한 점이라 단정했다. 내 시야는 언제나 트여 있고 앞서 나가며, 큰 그릇이 되지 못하는 그녀들을 판단했다.
과거에 친구들에 대해 써놓은 글을 보여 내 옹졸함에 부끄럽다. 세상을 우물에서만 바라보고 있다 해도 다들 성장하고 있었다. 자신과의 다름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대응하고 있었다. 그릇이 작아 보였던 사람들은 그릇이 아니고 컵이었다.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에 확신을 갖고 생각을 깊게 가진다. 반대로 그릇이 크다 생각한 사람들은 접시였다. 많은 것들을 수용하는 만큼 신경 쓰는 것의 깊이가 달랐다. 지금은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나중에는 멋져 보이고, 지금 세상의 답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나중에 답답한 꼰대처럼 변하기도 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들도 나도 성장 중이다. 성장한 친구는 어느새 나보다 커져있다.
꼰대의 모습도 이해가 되었다. 세상의 불합리함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내가 흐물흐물하면 안 된다. 내가 딱딱하고 강해야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 그리고 많은 불합리함을 겪은 사람일수록 꼰대가 된다. 내가 옳다고 믿기 때문에. 그럼 그가 잘못된 것일까. 우리 부모님이, 부모님의 부모님들이 잘못된 것일까. 내 자식들이 정답일 것인가.
그러니까 내가 진짜 하고싶은 말은,
똑같은 사람은 없고 오래 옆에 있는 사람이 결국 내 사람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을 나의 친구들아 내 옆에 부디 오래 남아줘라. (진짜 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