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은 끝났지만, 나는 시작되었다.

반창회

by 황지연

미영이가 등굣길에 내게 말을 걸었다.

우리도 반창회 하자.”

무심한 듯 던진 그 말 한마디는

내 하루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

“네가 남자애들한테 시간과 장소말해줄래?”


갑작스러운 부탁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조금 떨렸다.

아니, 많이 떨렸다.


왜냐하면

내 짝사랑 반장에게 전화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책상 위에 전화기를 올려놓고

숫자 버튼을 조심스레 눌렀다.


뚜... 뚜...

신호음이 울리는 동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수십 가지 멘트를 머릿속에서 리허설했다.

하지만 막상 그 아이가 전화를 받자,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용건을 말했다.


“응. 알아. 응, 응

아니, 몰라.

내가 애들한테 전해줄게.”


그 아이 말투는 무심했다.

아니, 무심하다기보다는

‘귀찮다’는 감정이 묻어 나왔다.


통화가 끝나,

나는 허무했다.


내가 오래 품어온 짝사랑이었다.

그 아이를 좋아한 시간이,

조금은 특별하다고 믿었던 마음이

그 짧은 통화 안에서

순식간에 부서졌다.


나는 그날 밤,

일기장에 또박또박 이렇게 썼다.


“너는 공부도 잘하고, 잘생겼고, 유머감각도 있고, 성격도 좋고, 여자애들에게 인기도 많.


그런데 나는 공부도 못하고, 못생겼고, 유머감각도 없고, 성격도 나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없어.”


“내가 너랑 비교되는 게 너무 괴로워.

너는 뭐든지 잘하고, 난 뭐든지 모자라니까.

난 널 좋아할 자격도 없어.

하지만 내가 노력해서 너랑 비교되는 점을 고칠게.

그때까지 날 잊지마.

내가 너랑 ‘동등한 사람’이 될 때까지 기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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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솔직해서 아플 정도였다.

너무 비교해서 서러울 정도였다.


그 말은

너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종종 나를 내가 아닌 누구로 만들어버리곤 한다.


그 아이와 동등해지고 싶었고,

결국 나 자신을 좋아하고 싶었다.


짝사랑은 늘 외롭고, 때로는 수치스럽기까지 하지만,

그 감정 속에는

나도 더 나아지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숨어 있었다.


그 아이를 향한 마음은

어쩌면 내가 되고 싶은 ‘이상’의 그림자였고,

내 안의 ‘부족함’이 만든 슬픈 거울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처음으로 내 마음을 똑바로 마주했다.


짝사랑은 한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라,

그 사람처럼 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나는 너를 좋아한 게 아니라,

너를 통해 나 자신을 찾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미워하고 있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예쁘고 따뜻했지만,

그 아이와 나를 비교하는 순간부터

그 감정은 나를 깎아내리는 칼날이 되었다.


나는 그 애처럼 되고 싶었고,

그 애만큼 잘나고 싶었고,

그 애처럼 사랑받고 싶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마음의 핵심엔

'나도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시에 내가 잘 몰랐던 건

사랑은 비교를 이긴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었다.


그 애를 좋아했던 마음보다,

그 애처럼 되고 싶었던 마음이 더 깊었다.


그리고 지금은 안다.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은 결국,

그 애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는 걸.


#중학생일기

#반창회

#사춘기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