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이 사라진 가을, 마음이 무너진 날의 기록

늦가을

by 황지연

시험을 망쳤다.

동시에 내 안에 있는 모든 감정도 꺼져버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슬퍼할 힘도, 변명할 의욕도, 다시 해보려는 용기도 모두 사라졌다.


“대학교는 포기해야 될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누구도 내게 그런 말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스스로를 체념했다.


엄마, 아빠는 어느새 날 포기한 것처럼 보였고,

나도 그것이 오히려 편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으면, 아무도 실망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나는

내가 했던 것들을 하나씩 놓기 시작했다.


힘들었던 공부도,

즐겨 듣던 라디오도,

재미있게 보던 만화책도,

심지어 먹는 일마저도.


나는 가을을 타는 게 아니라,

가을에 속수무책 무너지고 있었다.


밤이 되면,

차라리 무슨 병이라도 걸려서 멋지게 죽어가면 좋을 텐데...


하지만 내일이 오면,

나는 수레바퀴처럼 반복되는 생활을 계속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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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가장 깊은 어둠은,

종종 11월 늦가을에 같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시절의 가을 끝자락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삶은 바닥까지 가라앉아 사람만이

비로소 보이게 되는 찬란한 빛을 볼 수 있다.


절망은 끝이 아니라,

내가 나를 돌아보게 만든 시작이다.


무기력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조용히 내 안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기대도, 의욕도, 나 자신조차 놓아버렸던 그 순간들이

사실은 나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쉼표’ 다.


그러니,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그때의 나처럼 모든 게 싫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면 말해주고 싶다.


계절이 지나가는 것처럼

그 마음은 곧 지나간다.


버텨내자.

살아보자.


겨울이 지나가면 봄이 오듯

울고 나면 웃을 날이 반드시 온다.




#중학생일기

#늦가을

#사춘기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