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학
아침 9시
따르르릉, 따르르릉
전화벨 소리가 고요한 집 안을 울렸다.
전화를 받아보니 유치원 때부터 친구인 영희였다.
“수학 해답지 좀 빌려줄래?”
영희의 목소리는 아침 공기처럼 맑고 활기찼다.
겨울 방학인데도 일어나자마자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시작한 듯했다.
엄마가 옆에서 말했다.
“영희는 반에서 1, 2등을 다툰대.”
그 말을 듣자, 내 마음은 스르르 내려앉았다.
나는 10등 안에도 못 드는데,
영희는 항상 상위권에 있었다.
분명 이유는 있었다.
영희는 아침부터 밤까지 묵묵히 문제집을 풀고,
자투리 시간마저 허투루 쓰지 않고 책을 붙든다.
그 결과가, 매번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다.
나는 그걸 잘 안다.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달랐다.
난 머리가 나쁜 걸까, 아니면 마음이 약한 걸까.
책상에 앉으면 금세 마음이 흐트러지고,
하루의 절반은 그냥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그날, 괜히 창밖을 보았다.
눈이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다.
온 세상을 덮어버릴 듯 소리 없이 쌓였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나도 눈처럼 하루하루를 공부로 쌓아가야 하는데~’
그날 밤, 일기장을 꺼냈다.
그리고 꾹꾹 눌러 적었다.
“2학년부터는 잘할 거야.
그날 배운 건 반드시 문제집을 풀자.
난 꼭 10등 안에 들 거야.
물론 힘들겠지만 도전해 봐야지.
힘이 빠질 땐 영희를 생각하자.
영희는 내 경쟁자야.
난 꼭 할 거야. 꼭.”
글씨는 작게 썼지만,
그 안에는 겨울 아침보다 더 단단한 결심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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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 지난 지금, 그 겨울 아침을 떠올린다.
비교가 나를 아프게 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친구를 이기고 싶은 마음은
결국 나 자신을 이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비교는 언젠가 사라지고, 남은 건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결국 중요한 건 순위가 아니라, 나를 믿고 한 걸음씩 나아가게 만드는 의지다.
그리고 그 의지는, 이렇게 사소한 순간에서 시작된다.
눈 내리던 1993년 새해의 결심은 내 인생의 '리셋 버튼’이 되었다.
#중학생일기
#새해결심
#사춘기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