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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Jan 13. 2021

러시아보다 추운 한국? 지구 온난화의 '불편한 진실'

프레임 설정 실패와 언론의 책임 방기 속에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기후위기

지난 1월 8일 EU 산하 지구환경 관측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C3S)는 산업혁명 이후 2020년이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되었다고 발표했다. C3S에 따르면, 2015년부터 이상 고온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2020년에는 18세기에 비해 지구 평균기온이 1.2℃ 높아졌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이미 대기 중에 축적된 이산화탄소로 인해 지구 온난화 현상이 계속 악화하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인 1월 8일,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18℃를 기록했다. 당일 뉴스에서는 아침 7시 기준 모스크바가 영하 4도(체감온도 영하 9도)인데 반해, 서울은 영하 18도(체감온도 영하 24도)라며 러시아보다 추운 북극한파가 한반도를 강타했다고 보도했다. 지구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는데, 정작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일상은 수십 년 만의 기록적인 강추위인 셈이다.


영하 20도의 북극한파와 폭설로 꽁꽁 얼어붙은 2021년 1월 첫째 주 서울 풍경


이러한 모순된 현상에 대해 많은 시민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후 전문가들은 2021년의 시작과 함께 한반도에 찾아온 유례없는 한파 역시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라고 설명한다. 북극의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대기 상층의 제트기류가 약화되고, 그 결과 북극의 찬 공기가 남쪽으로 쉽게 내려오게 된다는 이치다. '음(-)의 북극진동'이라 불리는 이러한 현상은 이산화탄소 과다배출과 온실효과, 지구 온난화와 기상이변으로 이어지는 대기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다.


21세기 인류의 최대 과제 중 하나인 지구 환경보호는 '기후변화'라는 위기상황을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언론이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사이에 인터넷에서는 온갖 음모론과 회의적인 주장이 판을 치고 있다. 무엇이 사실인지, 왜 중요한지 소모적인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구의 병은 깊어지고 미래세대가 치러야 할 희생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사실 기후변화나 지구 온난화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들이 공개되어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기만 하면, 정치적인 선동부터 매우 전문적인 논문까지 다양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구태여 그러한 내용을 중언부언 정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글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류의 생존과 결부된 중차대한 이 문제가 여전히 논란이 되고 구체적인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진단이다.


내가 우선적으로 관심을 갖는 지점은 이 문제를 어떠한 프레임으로 접근하느냐, 즉 어떤 용어와 관점으로 대중에게 설명하느냐 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인 1975년 8월 과학전문 학술지 <사이언스>에 "기후변화, 우리는 뚜렷한 지구 온난화에 직면해 있는가"라는 논문이 발표되고나서부터다.


당시 43세의 젊은 과학자 월러스 스미스 브뢰커는 이 논문에서,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가 지구 온난화를 야기하고 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기상이변과 생태계 파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예견했다. 이후 지구의 대기환경은 브뢰커의 주장처럼 악화되어 갔다. 1980~90년대 '지구 온난화 경고'는 전 세계 많은 시민들에게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가 야기하는 그린하우스 효과


문제는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지구 온난화'를 대체하는 용어로 '기후변화'(climate change)가 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이는 전혀 다른 두 가지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첫 번째는 순수한 학문적 이유다. 과학자들과 기후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를 포괄하는 상위 개념인 기후변화를 사용하는 것이 학문적으로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지구 온난화는 기온 상승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기후변화는 강우, 강설, 해수면 상승 등 복합적인 요소를 모두 담고 있다.


지구의 환경위기를 기후변화로 통칭하게 된 두 번째 이유에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 있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조지 W. 부시와 민주당 후보 앨 고어는 예측불허의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당시 지구 온난화와 환경문제를 강조한 앨 고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입장을 가진 부시 캠프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유권자들이 덜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중립적이고 통제 가능한 용어를 선택하고자 했다. 일종의 선거 프레임으로 '기후변화'가 활용된 것이다.   


나름 합리적인 과학자들의 입장과 다분히 의도적인 정치인들의 술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21세기 지구 환경문제를 거론할 때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보다 기후변화를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교토의정서와 파리협정 같은 대표적인 기후변화 협약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언젠가부터 글로벌 환경의제의 공식 명칭이 기후변화로 고정되기 시작했다.  


글로벌 차원에서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룬 2015 파리협정  


하지만 미국 공화당 선거캠프의 의도대로, '기후변화'라는 용어는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일상의 변화를 촉구하는 데에는 부적절하다. 어젠다의 힘이 약하다 보니, 강력한 캠페인으로 확산되거나 시민들의 문제의식을 촉발하지도 못했다. 2019년 5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기후변화' 대신 '기후위기'(climate crisis)나 '기후비상'(climate emergency)을 사용하겠다고 선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적인 경각심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보다 강렬한 의미를 담은 용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 역시 언론과 소셜미디어에서 적절하게 다루어주지 않으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지구 온난화가 인류의 미래에 끼칠 심각성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데에는 언론의 구조적인 속성이 작용하고 있다. 기후위기로 치닫고 있는 지구 온난화 문제가 무시되거나 왜곡되는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은 바로 언론의 선정성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언론은 공적인 책임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하나의 상품으로써 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많이 판매되는 것에 전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만한 기사 제목과 보도 내용이다. 최대한 극적인 스토리를 담고 극한의 갈등을 조장하며 엽기적인 행태를 보여주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내용이 부실하면 제목이라도 '어그로'를 끌만큼 섹시해야 한다.


이 모든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재미없는' 분야가 바로 환경이다. 더구나 지구 온난화 같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환경 이슈는 하루하루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급급한 언론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근본적으로 지구 온난화가 야기하는 기후위기 문제를 전문적인 식견을 바탕으로 알기 쉽게 설명할 만한 기자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언론은 환경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기후위기의 방조자가 되었다.


무시만큼 나쁜 행태가 왜곡이다. 여기에도 언론의 고질적인 선정성이 드러난다. 2017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된 관련 논문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지구 온난화를 반대하거나 의심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과학자들의 견해보다 언론에서 더 많이 인용되었다고 한다. 신중한 팩트체킹보다는 왠지 사람들의 눈길을 끌만한 새롭고 도발적인 내용을 선호하는 언론의 특성이 빚어낸 참담한 비극이다.


러시아보다 한국이 더 춥다는 사실만으로도 논거가 흔들리는 지구 온난화의 '불편한 진실'은, 프레임이 되어줄 용어의 힘이 약하고 이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야 할 언론이 그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가운데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제라도 지역별 특수성을 감안하여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소하는 로드맵을 작성하고, 혁신적인 기술을 통해 대기 중의 탄소를 포집할 수 있는 지구공학적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등 지구 온난화를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화창한 공기와 온화한 기후 속에서 쾌적하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 21세기 인류의 지혜와 실천을 하나로 모을 때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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