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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Feb 26. 2021

인구 감소가 바람직한 6가지 이유

시민의 행복한 일상과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조건

"급격한 인구절벽", "가팔라진 데드크로스", "출산율 세계 꼴찌"

 

최근 우리 언론에서 연일 보도하는 자극적인 기사들이다. 제목만 보아서는 곧 우리 사회가 붕괴될 것 같은 공포와 절망을 느끼게 된다. 과연 그럴까? 인구 감소가 정말 문제일까? 도발적으로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인구 감소에서 한국의 희망을 발견한다.


나는 수년 동안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생활하고 여행하며 많은 체험의 시간을 가졌다. 덕분에 한국과 유럽 주요 국가들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관찰하고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한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인구 감소가 아닌 인구 과밀이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교육과 주거 등 여러 사회문제 때문에 저출산과 인구 감소가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주장한다. 지나치게 많은 인구 때문에 우리 사회의 각종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나의 진단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금부터 인구 감소가 바람직한 6가지 이유를 제시하도록 하겠다. 첫째, 인구 감소를 통해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이 회복된다.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노동력 부족으로 경기가 침체되고 다시 인구가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경고한다. 단지 머릿수로 노동력을 환산하는 산업화 시대의 발상이다. 천재 1명이 수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고,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세상에서, 더 이상 인구 규모가 국가경쟁력과 등치되지 않는다.


대체 가능한 인력이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사람을 언제든 교체 가능한 일개 부품으로 간주하는 국가에서 노동자의 인권과 존엄성을  지키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유럽에 살다 온 사람들은 서비스가 너무 느리고 비용이 많이 든다고 불평한다. 역으로 생각하면 한국 사회에서는 나를 위해 서비스를 해주는 노동자의 가치를 너무 쉽게 생각하거나 아예 무시한 게 아닐까?


둘째, 인구가 감소하면 주거환경이 개선되고 생활의 질이 향상된다. 20~30층의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한 서울의 주거환경은 정상이라고 보기 힘들다. 하지만 워낙 인구밀도가 높다 보니 대형 공동주택을 지을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게다가 많은 시민들은 강남의 초호화 아파트들에 사는 것을 평생의 꿈으로 삼는다.

반면에, 단독주택이 주를 이루고 5층 내외의 아담한 공동 빌라가 대세인 유럽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 아파트를 짓는다.


이러한 주거방식의 차이는 결국 인구가 원인이다. 좁은 면적에 빽빽하게 밀집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거주지를 제공하려면 고층아파트를 택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산책하고 뛰어놀 수 있는 탁 트인 야외 공간 역시 줄어든다는 점이다. 층간소음 문제 역시 심각하다. 유럽은 집집마다 잔디밭이나 야외 테라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집 근처에 공원과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인구가 적으니, 아무리 근교의 아름답고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도 붐비는 일이 없다.


유럽의 전형적인 도시 풍경. 고층 아파트는 거의 발견할 수 없다


셋째, 인구 감소와 함께 교육제도의 운영방식이 개선된다. 오전 오후반에 60명 이상이 한 교실에서 수업하며 거의 막장 교육을 받았던 과거와 비교하면, 20명 내외로 구성된 지금의 수업환경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학부와 대학원에서 다양한 교육을 경험한 나로서는 10명 이내의 클래스가 되어야만 제대로 된 발표와 토론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한 학교 운영을 걱정할 게 아니라, 상호 교감할 수 있는 양질의 수업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좋아해야 하지 않을까?


인구 감소를 통해 학생 수가 줄어들면, 줄 세우기 식의 상대평가가 아니라 개성과 창의력과 계발시킬 수 있는 절대평가를 도입할 수 있다. 과외나 학원을 통한 사교육은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학교에서 학생과 상담하여 별도의 보강수업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방식이 대세가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학생들은 경쟁의 스트레스보다는 협력의 소중함을 배우면서 인생의 가치관을 정립하게 된다.

  



넷째, 인구가 감소되면 부족한 일자리와 사회복지 문제가 완화된다. 자동화 기계가 인간의 육체를 대체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두뇌를 압도하면서, 정작 사람을 위한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인구 과밀 상태인 우리 입장에서는 이중 삼중의 곤혹스러운 상황인 셈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새로운 수요에 대응하는 직업 교육, 공공 일자리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직종 확대 등과 함께 인구의 자연 감소를 통한 적정 노동인력 유지가 필요하다.


출생부터 돌봄, 의료, 주거, 고용, 교육, 문화 등 생애주기별 광범위한 사회복지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재원확보와 대상자 선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제는 수혜대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복지 수준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이 강력한 사회복지를 실시할 수 있는 것은 중과세 정책과 더불어 부양인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었다.


다섯째, 인구 감소와 함께 결혼과 출생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무리 인구 감소가 바람직하더라도 급격하게 하락한다면 사회 시스템에 큰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현재의 결혼 비율과 출생률을 고려할 때, 인구 감소라는 전례 없는 현상을 연착륙시킬 수 있는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출생장려금과 양육수당 몇십만 원을 지급하는 식의 언발에 오줌 누는 지원은 방향도 효과도 잘못된 정책에 불과하다.


이제 우리는 자녀 양육 시 국가가 지원하는 복지혜택이 결혼과 동거 모두에 아무런 차별 없이 제공되는 유럽 사례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혼모도 마찬가지다. 젊은 남녀가 결혼을 해서 아이 2명 이상을 낳아 기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시절은 이미 끝났다. 독신, 기혼, 이혼, 동거, 동성결혼 등 다양한 조합을 인정하고 출산과 입양을 장려한다면, 완만한 추세의 인구 감소가 가능해질 것이다.      


여섯째, 적은 인구로도 부강한 경제와 품격 있는 삶을 확보한 사례가 얼마든지 존재한다. 현재 한국은 인구 1천만 명 이상 국가 중에서 인구밀도 3위다. 우리보다 상위에 있는 국가는 방글라데시와 대만, 단 두 나라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OECD 국가 중 압도적으로 인구밀도 1위다. 전체 인구 수만 놓고 보면, 유럽에서 러시아와 독일, 프랑스와 영국 등 4개 국가가 우리보다 많지만,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면적이 큰 국가이고 프랑스는 서유럽 면적 1위 국가이며, 그나마 가장 순위가 낮은 영국도 한국보다 2배 이상 면적이 크다. 반면 한국보다 1인당 GDP가 낮은 서유럽 국가는 스페인 단 하나다.  


오스트리아는 한국과 면적이 비슷하고, 국토의 2/3가 산맥인 지형구조도 유사하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반면, 중화학공업과 제철업, 기계공업 등이 발전한 것도 닮음꼴이다. 그런데 1인당 GDP 순위에서 오스트리아는 13위이고 한국은 26위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질이다.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는 10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되었다. 반면 서울은 70위권에 머물렀다.


세계 최고의 녹색도시이자 살기 좋은 곳 1위 비엔나는 도시의 50% 이상이 녹지다


과연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나는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로 한국의 1/5에도 못 미치는 오스트리아의 인구와 인구밀도에 주목한다. 비엔나 역시 서울 크기의 70%지만 거주인구는 190만 명 수준이다. 1천만 명이 생활하는 서울의 20%에도 못 미친다. 비엔나에서 공원을 비롯한 녹지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시민들이 소박하지만 여유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구가 적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세계적인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교통과 주거환경은 최악 수준이다. 출퇴근길에 서울 도심을 오고 가는 지하철 안에서 짐짝처럼 떠밀려 타는 시민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발견하기란 불가능하다. 수십억을 호가하는 강남의 초고층 아파트와 반지하, 옥탑방이 공존하는 서울의 주거 풍경은 극심한 빈부격차가 낳은 서글픈 자화상이다. 사회적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이를 차지하고 싶은 사람들은 과도할 정도로 많으니, 약육강식의 처절한 쟁탈전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상황이 이럴진대, 출생률이 떨어지고 자연적인 인구 감소가 현실이 되는 상황을 놓고 엄청난 재앙이 닥친 듯이 호들갑을 떨어서는 제대로 된 해법을 찾기 어렵다. 인구 감소를 바라보는 시각을 재정립하면서, 시민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는 충분히 존중받고 행복하게 살 자격을 갖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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