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집 뒷마당에는 장독대가 있었다. 햇볕 좋은 날 배가 불룩한 항아리 뚜껑을 열어두셨다. 내 키만 한 항아리도 있고 아기 배처럼 작은 것도 있었다. 고무줄을 끼운 삼베포가 항아리 입만큼 커다랗게 씌워져 있었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작은 고모랑 할머니는 뒷마당으로 후드득 달려갔다.
비 오는 날이면, 나는 그 남자에게 편지 쓰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의 회신을 기다리면서 설렜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호들갑스럽게 바쁜 일정을 보낼 것이란 예상과 달리 지루하고 무료한 시간에 어찌할 바를 몰랐기 때문에 더더욱. 낯가림도 심한 나에게 첫 일터이기도 하고 집을 나와서 기숙생활은 불안했을 뿐 아니라 잔뜩 긴장돼 있었다. 그러나 그 남자에게 한 문장 한 문장 이어가며, 주저리주저리 나의 마음을 떠들어대면 불안이 가시고 마음이 편해졌다.
비가 오고 창문 너머 잎사귀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아직도 기억에 있다.
2021년 3월 오늘, 봄비가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