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필사습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영 Feb 03. 2022

걷기예찬 中 (2)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보행자가 공간을 끝없이 돌아나닐 때 그는 자신의 몸을 통해서 그만큼의 대항해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몸은 언제나 인식을 위한 탐사가 진행중인 어떤 대륙과 비길 만한 것이 된다. 보행자는 전신의 모든 살로써 세계의 두근거리는 박동에 참가한다. 그는 길바닥의 돌이나 흙을 만진다. 두 손으로 나무껍질을 어루만지거나 시냇물 속에 손을 담근다. 그는 연못이나 호수에서 헤엄친다. 냄새가 몸속에 파고든다. 젖은 땅 냄새, 보리수 잎사귀, 인동덩굴, 송진 냄새, 늪의 악취, 대서양 연안지대의 요드 냄새, 대기 속에 가득찬 꽃향기의 층, 그는 어둠에 싸인 숲의 미묘한 두께를, 땅이나 나무들이 발산하는 미묘한 신비의 힘을 느낀다. 그는 별을 보고 밤의 질감을 안다. 그는 고르지 못한 땅바닥에 누워 잔다. 새들이 우짖는 소리, 숲이 떨리는 소리, 폭풍이 밀려오는 소리나 마을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소리나 햇빛 속으로 솔방울이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상처난 길을, 해질녘의 행복 혹은 고통을, 넘어지거나 곪아서 생긴 상흔을 알고 있다. 비를 맞아 옷이 젖고 양식이 젖고 오솔길이 질척거린다. 추위 때문에 발걸음이 더디어지고 결국은 땔감을 주워 모아 모닥불을 지펴 몸을 덥히고 가진 옷을 모두 꺼내 껴입을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더위 때문에 속옷이 살갗에 달라붙고 눈 위로 땀이 흘러내린다. 보행은 그 어떤 감각도 소홀히 하지 않는 모든 감각의 경험이다. 심지어 계절에 따라 열리는 산딸기, 머루, 오디, 개암열매, 호두, 밤의 맛을 아는 사람에게는 미각까지도 소홀히 하지 않는 전심감각의 경험이다.




필사13/ 2022.02.03

매거진의 이전글 걷기예찬 中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