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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Feb 02. 2022

걷기예찬 中 (1)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김화영 옮김

  걸어서 길을 가다보면 시간의 길이에 대한 일체의 감각이 사라져버린다. 걸어서 가는 사람은 몸과 욕망의 척도에 맞추어 느릿느릿해진 시간 속에 잠겨 있다. 혹시 서두르는 경우가 있다면 오직 기울어가는 해보다 더 빨리 가야겠다는 서두름 정도이겠다. 종루의 시계는 우주적이다. 그 시계는 시간을 꼼꼼하게 잘라 나누어놓는 문화의 시계가 아니라 자연과 몸의 시계다. 시간 속에서의 자유는 또한 같은 여행 중에 깊은 산속을 걸으면서 여러 계절을 두루 거쳐가는 자유이기도 하다. 가령 눈 속에 사는 표범들의 생태를 관찰하기 위하여 티베트 국경 부근 네팔지역 돌포고원을 찾아간 마티센과 그의 동료 조르주 샬러가 경험한 것이 바로 그런 자유다. '라카는 한겨울이었다. 무르와에서는 이제 막 날씨가 험악해지고 있었고 로하가옹은 모르익은 가을이었다. 티브리코트로 내려가는 골짜기에서는 호두나무에 아직 잎이 달려있다.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푸른 고사리들이 구릿빛 풀잎들에 엉켜 있는데 문득 오디새 한 마리를 만난다. 제비떼 나비떼들이 따뜻한 대기 속에 날고 있다. 이렇게 하여 나는 기울어가는 여름의 나른한 빛 속에서 시간을 반대로 거슬러가며 여행한다.'






필사12/ 202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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