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예찬 中 (1)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김화영 옮김

by 지영

걸어서 길을 가다보면 시간의 길이에 대한 일체의 감각이 사라져버린다. 걸어서 가는 사람은 몸과 욕망의 척도에 맞추어 느릿느릿해진 시간 속에 잠겨 있다. 혹시 서두르는 경우가 있다면 오직 기울어가는 해보다 더 빨리 가야겠다는 서두름 정도이겠다. 종루의 시계는 우주적이다. 그 시계는 시간을 꼼꼼하게 잘라 나누어놓는 문화의 시계가 아니라 자연과 몸의 시계다. 시간 속에서의 자유는 또한 같은 여행 중에 깊은 산속을 걸으면서 여러 계절을 두루 거쳐가는 자유이기도 하다. 가령 눈 속에 사는 표범들의 생태를 관찰하기 위하여 티베트 국경 부근 네팔지역 돌포고원을 찾아간 마티센과 그의 동료 조르주 샬러가 경험한 것이 바로 그런 자유다. '라카는 한겨울이었다. 무르와에서는 이제 막 날씨가 험악해지고 있었고 로하가옹은 모르익은 가을이었다. 티브리코트로 내려가는 골짜기에서는 호두나무에 아직 잎이 달려있다.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푸른 고사리들이 구릿빛 풀잎들에 엉켜 있는데 문득 오디새 한 마리를 만난다. 제비떼 나비떼들이 따뜻한 대기 속에 날고 있다. 이렇게 하여 나는 기울어가는 여름의 나른한 빛 속에서 시간을 반대로 거슬러가며 여행한다.'






필사12/ 202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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