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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Feb 04. 2022

맨발

김사인 / 시를 어루만지다 中


맨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좋은 시, 좋은 표현은 반드시 우리 몸의 어딘가를 건드려 사람을 아찔하게 만든다. 어디 시뿐이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그러하다. 그리고 그러한 아름다움은 예술가의 의욕에 따라 아무 때나 조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도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서정시의 전통적인 어법들이 결코 그 생명을 다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문태준의 '맨발'에서 확인하게 된다.

   밖으로 내민 부르튼 조갯살에서 죽은 부처의 맨발의 보는 대목도 아름답지만,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린다는 대목, 최초의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는 대목들은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이어지는 "천천히 돌아"옴, 그리고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의 깊은 울림은 또 어떠한가! 문득 거룩하지 않은가. 독자들은 충분히 황홀하리라 생각한다.

  이런 기막힌 활구를 몇 대목 더 얻을 수 있다면 시인의 가난한 한 생애가 섭섭지 않을 듯하다.




필사14/ 202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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