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필사습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영 Feb 15. 2022

침묵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 中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며 주위에서 울려오는 소리들을 음미하고 즐기는 것이다. 고속도로변의 난간을 따라, 혹은 국도변을 따라 거닐면서 가공할 기분전환을 시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결코 그의 정신상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걷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자동차의 소음과 꽝꽝 대는 카라디오의 시끄러운 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세상 밖으로 외출한 것이다. 그는 세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소로는 이렇게 쓰고 있다. ‘대기 속에는 바람에 울리는 자명금 같은 미묘한 음악이 가득하다. 허공의 저 높은 곳을 덮고 있는 아득한 궁륭 밑에서는 선율이 아름다운 피리 소리가 울린다. 하늘 높은 곳으로부터 우리들의 귓가로 와서 스러지는 음악이다. 마치 대자연에도 어떤 성격이 있고 지능이 있다는 듯 소리 하나하나가 깊은 명상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 같다. 내 가슴은 나무들 속에서 수런거리는 바람 소리에 전율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리멸렬한 삶에 지쳐 있던 내가 돌연 그 소리들을 통해서 내 힘과 정신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소리들이 침묵의 한가운데로 흐르지만 그 침묵의 배열과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때로는 그 소리들이 침묵의 존재를 드러내주고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어떤 장소의 청각적 질감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어 준다. 침묵은 감각의 한 양식이며 개인을 사로잡는 어떤 감정이다. 


 세상의 여러 가지 희미한 소리들은 시간과 날과 계절에 따라 그 음조가 달라질 뿐 그치지 않는다. 어떤 장소들에서는 그래도 침묵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돌들 사이로 길을 내며 흐르는 샘물소리, 한밤의 어둠을 가르는 올빼미 울음소리, 연못의 수면 위로 잉어가 펄쩍 뛰어오르는 소리, 발 밑에 뽀드득 뽀드득 눈 밟히는 소리, 햇빛을 받아 솔방울 터지는 소리는 침묵에 밀도를 부여한다. 쉽게 분간하기 어려운 이런 현상들 덕분에 그 장소에서 발산되는 고즈넉함의 감정이 더욱 구체화된다. 이와 같은 침묵의 창조는 어떤 결함에 의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침묵 속에는 이 세계의 정경을 가리는 그 어떤 잡음도 없기 때문이다. 바슐라르는 말한다. ‘우리들의 영혼은 침묵의 소리를 잘 듣기 위하여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다무는 그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침묵을 만들어내는 것은 소리의 사라짐이 아니라 귀를 기울이는 자질, 공간에 생명을 부여하는 존재의 가벼운 맥박이다. '마을들을 떠나 숲이 가까워지면 나는 '침묵'의 개들이 달을 보고 짖는 소리를 들으려고, 사냥감이 다니는 길로 그 개들이 나와 있는지 어떤지를 보려고 이따금씩 귀를 기울인다. 달의 여신, 사냥의 여신인 다이애나가 밤 속에 있지 않다면 밤이란 무엇이겠는가? 나는 여신 다이애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침묵이 메아리친다. 음악이 된 침묵에 나는 황홀해진다. 귀에 들리는 침묵의 밤! 나는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다.'




필사 21/ 2022.02.15

매거진의 이전글 걷기예찬 中(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