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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Mar 06. 2022

씨앗의 기적

우종영/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中

  이른 봄, 겨우내 얼어 있던 굳은 땅을 뚫고 세상에 나온 여린 싹은 씨앗이 긴 기다림 끝에 만들어 낸 기적이다. 늦여름 어미 나무에서 떨어진 작은 씨앗은 떨어진 순간부터 자신에게 맞는 토양을 찾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난다. 운이 좋아 1년 만에 자리를 잡고 싹을 틔우기도 하지만, 적당한 환경과 조건을 만나지 못해 딱딱한 껍질 안에서 수십 년을 보내기도 한다. 바람에 날리거나 물에 떠내려가 싹을 틔울 만한 흙에 안착했다 해도 자신에게 꼭 맞는 온도와 수분 적절한 빛의 배분 등 여러 조건이 맞을 때를 또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땅속의  깜깜한 어둠은 자궁 삼아 긴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이제 됐다’하는 결심이 서면 용기 있게 흙 밖으로 머리를 내민다. 다만 그 결심의 순간이 언제인지는 오직 시앗 자신만이 안다. 그것은 씨앗 본연의 생리적 선택이자 삶의 방식이다. 우리가 여름에 흔히 먹는 체리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백 년 이상 씨앗으로 남아있기도 한다.

      

  씨앗 안에는 오래도록 씨앗으로 존재하려는 현재 지향성과 껍질을 벗고 나무로 자라려는 미래의 용기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것은 좋은 환경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는 힘과 언제든지 싹을 틔우려는 상반된 힘이 씨앗 안에서 갈등하고 타협한다는 증거다. 긴 기다림 끝에 싹을 틔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씨앗은 결국 나무가 되지 못하고 그냥 생을 마감한다. 한 예로 자작나무의 경우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도 씨앗에서 싹이 트는 발아율은 고작 10퍼센트 남짓이다. 두렵지만 용기를 내 껍질을 뚫고 나오는 씨앗만이 성목으로 자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싹을 틔우는 씨앗의 기적은 그저 맹목적인 기다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용기 있게 하늘을 향해 첫발을 내딛지 못하면 기다림은 결국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한다. (중략)


 “기다리기만 한다고 저절로 때가 오지는 않아요. 가장 좋은 때는 결국 자기가 만들어 가는 겁니다. 무엇이든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끈기 있게 기다리는 자세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기다림 그 자체만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작은 씨앗이 캄캄한 흙을 뚫고 세상 밖으로 머리를 내밀 듯, 우선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려는 요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새로운 시작은 두렵고 떨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살아보니 틀린 길은 없었다. 시도한 일이 혹시 실패한다 해도 경험은 남아서 다른 일을 함에 있어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꿈을 이루기 위해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해 볼 여지가 있다면, 씨앗이 껍질을 뚫고 세상으로 나오듯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괴테도 말하지 않았던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당신의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이 모두 숨어 있다”고.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거목도 그 처음은 손톱보다도 작은 씨앗이었음을 잊기 말기를.  


    



  우종영/ 출판 메이븐/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p9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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