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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Mar 05. 2022

오래된 나무

  오래된 나무는 대부분 속이 비어 있다. 대표적인 예가 태백산 산자락에 살고 있는 주목나무들이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간다는 주목나무는 세월이 흐를수록 속을 비워 몸 안의 빈 공간을 넓혀 간다. 한겨울 세찬 바람이 불 때 태백산에 오르면 주목나무에서 오래된 퉁소 소리처럼 깊은 울림을 들을 수 있다. 속이 비어 있어야만 들을 수 있는, 영겁의 세월이 만들어 낸 소리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나무 역시 나이가 들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상처에 대한 재생력도 줄어든다. 비바람에 가지가 부러지거나 병충해로 수피가 다치면 상처 부위에 물이 흘러들어 조금씩 썩게 된다. 그로 인해 나무의 무게를 견고히 받치고 있는 중심부는 조금씩 부식되고, 중심 목질부가 사라진 자리에는 빈 공간만 남는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나무가 쓰러지는 것은 아니다. 수백 년을 지탱해 온 뿌리의 힘으로 굳건히 버티면서 나무는 상처가 남긴 빈 공간에 작은 들짐승과 곤충들을 품는다. 나무의 텅 빈 속이 한겨울 매서운 비바람에 지친 동물들의 은신처로 변모하는 것이다. 살아서 몸을 보시(布施)한다고 할까, 노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그릇이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듯, 비어 있음으로 유용하다”고.


  (중략)

  나이 든 자에게 필요한 것은 세월이 만들어 낸 빈 공간에 작은 들짐승과 곤충들을 품어 내는 주목나무의 자세가 아닐까. 주목나무가 비어 있지 않았다면 한겨울 매서운 비바람에 작은 들짐승과 곤충들은 추위에 떨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물러나야 할 때 억지를 부리기보다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잘 내려놓고, 그 빈자리를 드러내야 한다.   

   


  우종영/ 출판 메이븐/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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