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걸음(2025.01.02)
머물러 있다. 아직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다. 2024년의 일들이 아직 나를 내주지 않는다. 지난주 시아버지를 영계(靈界)에 보내드렸고, 지난주 10년간의 직장도 마무리를 짓고 나와야 했다. 누구보다 깔끔한 새해를 맞이할 줄 알았지만, 밍기적거리며 그 일들이 나를 자꾸 주저앉힌다. 제자리에서 뭉개고 앉아 있을 나를 무서워하는 것 같다, 내가. 그래서였을까, 자다가 일어나니 새벽 3시, 글이라도 써야 하나……
새해다. 한국 사람이어서 참 다행이다. 1월 1일 첫걸음을 내딛지 못하면 설날까지 기다려도 된다. 설날까지 기다렸다가, 그때 첫발을 떼도 되니 천만다행이다. 미처 시작을 못했어도, 시작했다가 혹시 망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한 번 더 있는 것이다.
아직은 여기서 조금 더 뭉그적거리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어릴 때는 어떤 일의 시작점에, 첫출발에, 첫 페이지에 작은 흠이라도 생길라치면 속상했다. 일 년이, 전부가, 다, 모두, 깡그리 망한 것 같아서 울었다. 누군가가, 무엇이 흠집을 냈다며 나보다 그를 탓하며 분노하기도 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
여유롭게 마음이 조금 말랑말랑해진 것은 나이 덕분일까. 첫걸음이 조금 늦더라도, 그동안 다른 사람을 기다려주었듯이 나에게도 시간을 좀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