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
최근에 유쾌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 전화가 왔다. 반갑게 인사를 건넸는데, 뜻밖에 나에게 직책을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이미 그 모임과 거리를 두고 있었기에 분명하게 거절했지만 막무가내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박수 소리는 더욱 부담스러웠다. 다시 한번 정중히 거절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들은 내 부모를 알고, 또 나보다 연령이 높은 까닭에 억지로 이해했지만 그 과정은 난처하고 불쾌했다.
부탁을 거절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마음도 언짢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였을까? 학생 시절부터 나는 부탁을 하거나 누군가를 의지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준비물을 잘 챙기고 과제나 업무를 할 때도 빈틈없이 처리하려고 노력했다. 성격이 꼼꼼하다거나 치밀해서가 아니다.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거절은 여전히 어렵다. 되도록 상대의 요청에 응해주는 편이지만 정말 할 수 없을 때는 상황을 설명하고 거절할 수밖에 없다. 상대의 상황에 공감한 뒤, 나의 사정을 솔직히 전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물러선다. 부탁한 그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민망하지 않도록 마음을 낸다.
갑작스런 전화로 나에게 감투를 씌운 모임의 회장님이 그것과는 다른 일로 연락을 주셨다. 나와 연계된 일인데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체크하신 후, 한참 후배인 나에게 경과를 보고 해 주셨다. 그 열의를 보고, 억지스럽게 주어진 직책일지라도 나도 잘 도와드릴 마음을 갖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이제는 ‘그럴 수도 있지’, ‘이유가 있겠지’,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며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한결 쉬워졌다. 그러다 보니 거절당해도 무안한 마음이 줄어들었다. 물론 거절의 씁쓸함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지만, 감정을 덜어내며 부탁과 거절 사이에서 나다운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