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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수제비!

# 수제비

by 지영


끓는 육수에 부드럽게 반죽한 밀가루를 손으로 떼어 넣는다. 수제비다. 생각난 김에 오늘 저녁은 수제비를 끓였다.


수제비는 '운두병'(雲 頭 餠)이라고도 불렸다. '구름 같은 떡'이라는 뜻 때문인지 고급 음식처럼 들린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양반들의 별식으로 잔치상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밀 재배가 일부 지역에서만 이루어져 귀한 식재료였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 밀의 보급이 늘어나면서 수제비는 점차 대중적인 음식이 되었다.


아이들 어릴 때, 수제비를 만들 때면 쭈르르 세 아이가 의자에 올라서서 반죽 뜯어 넣는 걸 따라 했다. 작은 의자는 두 개, 세 아이가 순서를 기다리며 두 명씩 나란히 서 있던 생각을 하니 귀여운 마음에 웃는다.


북한에서는 수제비와 비슷한 음식을 ‘뜨더국’이라 부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수제비’라는 단어는 조선 중기에 등장했는데, ‘손’을 뜻하는 한자 ‘수(手)’와 ‘접다’라는 뜻의 ‘접’이 합쳐져 ‘수접이’로 불리다 변형된 것이라 한다. 참 순박한 어원의 시작이다.


반죽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에 물을 조금씩 넣으며 농도를 조절한다. 너무 단단해도 안 되고, 너무 질면 다시 밀가루를 더 넣어 조정한다. 적당히 쫀득한 탄력이 느껴질 때의 뿌듯함이란…. 어릴 때 어머니가 하시던 대로 비닐에 담아 한 시간 정도 숙성시키면 나도 요리를 잘하는 사람처럼 느껴져 은근히 신이 난다.


좋은 국물을 내는 것은 어렵다. 갖가지 재료를 넣고 끓이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걸까. 하지만 요즘은 마법 같은 육수 코인이 있어 국물 내기가 한결 수월하다. 덕분에 반죽만 준비해 두면 빠르게 수제비를 완성할 수 있다. 물론 숙성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읽다 보면 그 시간도 지루하지 않다. 냉장고에 있는 감자, 애호박, 양파, 당근 등을 썰어 넣으면 더욱 든든한 한 끼가 된다.


육수가 팔팔 끓으면 손에 물을 살짝 묻히고 반죽을 얇게 떼어 넣는다. 길쭉하거나 둥글거나 넓적하거나,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맛있으면 그만이다. 반죽을 넣고 휘~ 저어주며 다진 마늘과 다대기, 칼칼한 맛을 더해줄 청양고추도 넣는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정겹다. 바닥에 들러붙지 않도록 국자로 저어주고, 마지막으로 파를 썰어 넣고 간을 맞추면 완성이다.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만, 위 건강을 위해 자제하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정히 먹고 싶을 때는 수제비를 먹으라고, 아플 때 절의 스님이 해주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건강을 생각해 음식을 조절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가끔은 마음이 원하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이 약보다 나을 때도 있다. 즐겁게 먹는 것이 가장 큰 보약이려니, 즐거운 마음으로 내 앞의 음식을 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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