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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빔

# 명절

by 지영

명절이면 엄마는 늘 새 옷을 사주셨다. 새 옷 냄새와 낯선 촉감이 어색했지만, 엄마는 우리에게 새 옷을 입히셨다. 명절 아침 나의 모습이 그래서 좀 서먹했다. 어릴 때 입던 한복을 더 이상 입지 않을 때부터 설빔, 추석빔을 입었던 것 같다.


옷을 골라놓고 나는 저만치 내뺀 채 엄마를 기다리던 모습이 기억에 있다. 엄마가 주인이 부른 가격의 반값을 불러가며 흥정하실 때면, 어린 마음에 창피했다. 소리도 크지 않고 말씨도 부드럽던 엄마는 늘 주인을 설득해 만족할 만한 가격에 옷을 받아오셨다. 나는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곤 했다. 나올 때면 엄마는 주인과 기분 좋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엄마의 흥정 솜씨는 보통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명절 때만큼은 가격을 깎지 않고 온전히 제값을 다 치르셨다.


바빠서 그랬는지, 어려운 형편에 그리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새 양말이라도 꼭 신었던 어린 시절 덕분에, 나도 엄마가 되어 명절이면 새 옷을 사서 입혔다. 굳이 설빔이니 추석빔이니 생색을 내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기억하고 있다.


올해는 지방으로 이사를 하고 정신없는 통에, ‘이제 다 컸는데....’ 싶어 가만 있었더니 둘째가 한마디 한다. “명절인데 옷 안 사줘요?” 마음에 걸려 있기도 해서, 마침 백화점에 있었으니 하나씩 골라라 했더니 다들 웃고만 만다.


청년이 되고 직장을 다니다 보니 저들이 내어놓는 돈이 더 크지만 명절이면 그래도 티셔츠 하나라도 꼭 사서 입히고 싶다.


설빔이니 추석빔이니 하는데, ‘빔’은 중세 ‘비스다’('ㅅ'이 아니고 반치음))에서 유래했다. 중세에 ‘꾸미다’ ‘단장하다’의 뜻을 가진 말이 명사형 접미사 ‘옴/움’이 붙어 ‘‘빗(반치음)옴’을 거쳐 ‘빔’으로 변한 것이다. ‘빔’이 명절이나 특별한 날의 명사와 결합해 설빔, 추석빔으로 나타난 것이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과 명절을 지낼 때면 이 말을 알려주곤 했다. 외국에도 우리처럼 명절에 새 옷을 입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서 마음이 비슷한 것이다. 새 출발을 응원해 주고 싶고, 축하해 주고 싶은 그 마음은 다 사랑이다.


올해 설빔은 아이들 대신 친정엄마와 시어머님을 위해 준비했다. 두 분 모두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맞는 명절이다. 마음을 담아 따뜻하고 고운 빛깔로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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