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남준
도심 골목 담벼락 밑 작은 꽃밭
어느 할머니 애지중지 상추와 쑥갓을 키웠으리
자식들 따라나서며 논밭을 버린
속창시 빠진 마음
솔솔 재미 붙이는데
누가 자꾸 뽑아 가나 그 심사
궁리 끝에 헌 종이 박스에 써서 꽂아 놓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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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년 나뿐연
상추 뽀바간연
처먹고 디저라
한두번도 아니고 매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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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그러니까 이게 저주라면 참말로 독한 저준데
상추 먹고 급살 맞을 사람 어디 있을까
할머니는 자못 심각한 일인데
무섭다기보다 재미있어서
도동년은 이제 욕도 처먹었겠다 상추를 또 뽑아갈 것 같고
그다음 처방은 뭐라고 내 걸릴까 슬슬 궁금해지고
시방 나는 웃음이 나는 걸 어쩌겠는가
- 시집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걷는사람, 2021)
<단상>
어른들 이야기를 잘 듣고 있자면, 삶 자체가 한 편의 다큐이고 詩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적어놓으면, 그 또한 詩다.
이 시에 등장하는 할머니의 거침없는 욕설도 이렇게 통쾌한 詩가 되었다.
할머니의 욕솜씨가 보통은 아닌 듯하다. 발음 그대로 쓴 삐딱삐딱한 종이팻말이 눈 앞에 선하다. 얼마나 속상하셨으면 그러셨을까, 한두 번은 그러려니 했지만, 양심도 버리고 매번 그러니, 좋은 마음을 더 낼 수 없었던 까닭에 할머니도 자신의 분노를 저주처럼 내걸었다. 할머니의 심각한 절실함이 우리에게 주는 유쾌함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