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에세이; 8일차 (p163-193)

by 지영

노인의 고른 숨소리가 차갑게 느껴졌다. 문득 노인이 낯설어졌다. 어르신을 깨워 엎드린 자세를 취하게 했다. 노인은 호주머니에서 지폐 두 장을 꺼내 내 손에 쥐여주었다. 수고비를 따로 챙겨주는 것이다. 나는 오늘만은 이 돈을 받고 싶지 않았다. 숍에서는 관례처럼 노인이 팁을 챙겨주니, 10분 정도는 서비스로 시간을 늘려 시술해드리라고 귀띔했다. 지금까지 나는 모든 게 호의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오늘은 그 모든 게 다르게 느껴졌다.

아니, 속물은 나였다. 노인이 자산가가 아니었다면, 내게 수고비를 챙겨주지 않았다면 나는 노인을 존경했을까.(p.193)



< 단상 >

‘돈 있는’ 사람들에게, 의식하지 않았어도 태도가 부드럽고, 더 성의있게 대하게 될뿐 아니라 마음 기울어지는 순간을 알아차린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돈 없는’ 사람을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그런 나를 발견하고 놀라, 남편에게 고백한 적이 있다. 부끄러웠다. 마음의 기울임이 없도록 늘 주의해야 한다.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이 있었다. 세상은 ‘갑질’과 ‘재벌 특권의식’에 분노하고 있었다. 나는 미혼모와 장애인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이면서도,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는, 털털하고 편견 없어 보이는 어느 그룹 회장의 며느리를 알고 있다. 늘 그녀의 건물은 우리의 모임 장소였다.

그런데 승무원을 쫓아내고 회항시킨 행동에 모두가 어이없어하던 그때, 그녀는 뜻밖에도 “조 전 부사장이 재수 없게 과녁이 된 것뿐”이라며, 되레 기내 서비스 교육과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며 조 부사장을 옹호했다. 이 글을 읽자니 그녀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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