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원 에세이 : 1일 차 (처음~p26)
상대방의 얼굴을 유심히 보며 대화하는 편인데, 헤어져 돌아오면 얼굴은 그새 감감해지고 그의 목소리만 귓전에 남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숨이 끊어지고도 끝까지 남는 감각이 청각이라더니, 그래서일까 짐작해 본다.
반대로 어떤 이의 목소리를 아무래도 떠오릴 수 없어서 괴로울 때도 있다. 전화를 걸거나 다시 만나면 해결될 마음이지만,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형평도 있으니까. 그럴 때 목소리에 대한 그리움은 얼굴에 비해 결코 사소하지 않다. 목소리는 눈동자와 입술과 손가락을 다 가진, 사무치게 쓰다듬고 싶은 몸이 된다.
겨울에는 언 강 앞에 자주 앉는다. 어떤 풍경은 스쳐 지나가지 못하고 머물러야만 하는데, 내게는 언 강이 그렇다.(p17)
(중략)
어쩌면 강도 영영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어, 소리를 얼려두나 보다. 어느 때 산과 땅을 울리도록 그리운 소리가 터져 나오기를 기다리며, 얼음 모자를 쓰고 있는 지도.
우리는 그 소리를 한번 더 듣기를 바라면서 말없이 서 있었다. 더없는 겨울의 마음으로. (p20)
<단상>
“고맙다”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 아버지가 내게 남기신 마지막 말이다. 언제부턴가 전화 끝마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날도 ‘고맙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으셨다. 마지막 목소리였다.
착하긴 하지만 인정머리는 없다며 가끔 엄마가 투덜거셨지만, 아버지는 누구에게나 다정한 분이었다. 소리가 힘 있고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며 엄마가 잔소리를 하셨지만, 그 목소리에는 늘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점점 흐려지는 발음이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이미 뇌출혈이 진행되고 있었던 탓이었다.
내 딸은 일상을 자꾸 사진과 소리로 남긴다. 훗날 우리가 그리울 때 다시 듣고 보려는 거란다. 한 번씩 틀어놓고, 배가 아프도록 웃기도 한다. 지금은 웃겠지만, 훗날 우리가 죽은 후 펑펑 울지도 모른다.
정말 소리를 냉동실에 얼려둘 수 있다면 좋겠다. 가끔 꺼내어 해동해 놓고, 소리를 들을 후, 다시 얼려둘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