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원 에세이: 3일 차(p45~61)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우리는 잘 모르는 것을 무서워한다. 순서를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그토록 겁을 먹었던 건, 칠흑의 어둠 속에 어떤 얼굴이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였다. 그래서 어느 마당에 어떤 나무와 꽃이 피는지까지 알게 되었을 때, 더는 밤길이 힘들지 않았다. 앞, 옆, 뒤가 아니라 별이 흐리게 묻힌 하늘을 볼 수도 있었다. 불이 꺼진 창도, 그 창 너머에 내가 아는 누군가가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감은 눈꺼풀처럼 순하게만 보였다.(46~47p)
‘과일이 둥근 것은’
나와 아저씨들은 끝까지 서로의 신상에 관해서는 몰랐지만, 아랑곳 않고 곁을 내주었다. 집 앞 담벼락과 트럭 밑처럼, 거기 둥근 밥그릇처럼, 질박한 공간을 당당히 차지하도록 허락했다. 우리는 구석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구석의 목소리는 곧 꺼질 불씨처럼 위태로워서, 구석끼리 자꾸 말을 시켜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연민이 아니라,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 바치는 아부가 아니라, 나에게도 있고 타인에게도 있는 외로움의 가능성을 보살피려는 마음이 있어 우리는 작은 원을 그렸다.(55p)
<단상>
여행지에서의 아침은 늘 산책이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며 골목골목을 걸어본다. 모르는 언어 앞에서는 더 긴장한다. 길을 잃지 않으려 건물 하나하나를 세심히 눈에 새겨둔다. 출근길 사람들, 학생들이 스쳐 지난다.
어릴 때 망토를 두르면 그들은 나를 못 보지만 나는 그들을 볼 수 있는, 투명인간이 되어 나만 그들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아침만의 청량함과 맑음, 거기에 유쾌함이 어우러진 동네 한 바퀴, 그렇게 한 시간 정도 걸으면 행복한 주문에 걸린 것 같았다.
낯선 아침을 걷는 즐거움은 이사 온 동네에서도 같다.
나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그것도 낯선 도시로 사투리도 제각각이었다. 그때마다 작가처럼 나도 골목을 살피며, 눈길이 닿은 곳을 사진으로 찍기도 하며, 동네를 올랐다 내려왔다 한다. 이곳에 온 지도 이제 석 달, 먼지 낀 유리창에 임대문의가 붙은 빈 가게들이 많아서 놀랐다. 예전에 일본 센다이 시내에서 보았던 빈집 풍경이 떠올랐다.
오늘은 파랗게 칠한 나무 의자 아래 고양이 두 마리를 보았다. 둘이서 혹은 셋은 앉아도 되는 넉넉한 의자였다. 고양이들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해 앉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여름은 깊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