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책

한정원 에세이 : 7일차 (p107~125)

by 지영

‘하룻밤 사이에도 겨울은 올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불운이 우리를 숨어 기다리는지 짐작도 하지 못하고, 그저 책으로 겪는 불행만으로 몸을 떨었던 스무 살의 우리. 정말 모든 것들은 하룻밤 사이에 왔다. 어둡고 차가운 것일수록 더 빠르게. 시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시인의 불행은 우리 것이 되기도 했다.(p.110)

문학은 결국 문과 창문을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나 보다. 단단한 벽을 뚫어 통로를 내고, 거기 무엇을 드나들게 하고, 때로 드나들지 못하게 하고, 안에서 밖을 밖에서 안을 살피는 일.

이제 나는 가진 것 중 가장 단단한 나무를 재단하고, 사포질을 하고 있다. 이것으로 다시 길고 긴 계절의 틈을, 하룻밤의 간격을 메워볼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p.111)


‘꿈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네’

꿈결이라는 말이 있다.

(결'은 한때나 사이의 시간을 뜻하면서 또한 나무나 물, 살갗의 무늬를 일컫기도 한다. 전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이라 어떤 단어와 함께했을 때 모호하고 상대적인 세계를 펼쳐 보이고, 후자는 선명하게 보일 뿐 아니라 만질 수도 있어서 단어에 몸의 감각을 부여한다.

그래서 '결'은 어느 쪽의 의미로든 '꿈'이라는 단어와 어울린다. 꿈은 실재하지 않지만 실감이 있고, 꿈을 꾼다는 것은 정신과 밀접하지만 결국 몸의 일이기도 하다.(p.115)




<단상>

맞아요. 겨울은 하룻밤 사이에도 찾아옵니다. 몰래 숨어 있다가 불쑥 나타나 화들짝 놀라게 하고, 뒷짐을 진 채 지켜봅니다. 그래서일까요. 정성 들이는 마음으로 착하게 살아가려는 나는, 실은 세상을 두려워하는 겁쟁이입니다.

그런데 겨울을 지나 다시 봄에 이르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억울함과 슬픔, 죄책감과 노력, 그리고 수고와 눈물이 모여 강이 되고, 그 강을 건너야만 봄에 닿을 수 있습니다.

*한정원 작가가 궁금합니다. 참 글을 잘 쓰시네요.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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