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원 에세이 : 8일차 p129~144
‘하나의 창문이면 충분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늘 창문 곁에 바짝 붙어 있었다.
창을 통해 바깥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도, 나를 속이는 것도, 나를 떠나는 것도, 다 창문으로 보았다. 어느 때는 창문을 닫고 두려워했고, 또 어느 때는 활짝 열어 지나가는 모든 행인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니까 창문을 나의 마음처럼, 나의 말처럼 쓴 것이다.(132p)
‘회색의 힘’
나는 흐린 날을 다정히 맞는 편이다. 침침한 빛, 자욱한 사물들, 묵직하게 흩어지는 향, 흐린 날에는 모든 존재가 자신을 잠잠하게 드러낸다. 내 안의 언어와 비언어들조차 소란스럽지 않다. 그 세계가 몹시 안온하고 충만해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p136)
체스터튼은 『정통』에서 그러한 무게의 해악을 설명하며, "자신을 중시하는 쪽으로 가라앉지" 말고 "자기를 잊어버리는 쾌활함 쪽으로 올라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숙함은 인간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지만, 웃음은 일종의 도약이기 때문이다. 무거워지는 것은 쉽고 가벼워지는 것은 어렵다."
결국 발목에 추를 달 줄도, 손목에 풍선을 달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양극을 번갈아 오가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두 겹의 감정을 포용하라는 것이다. 추를 달 때 풍선을 기억하고, 풍선을 달 때 추를 잊지 않기.(137p)
<단상>
창문 곁에서 편지를 쓰곤 했다. 그때 창밖으로, 나뭇잎에 떨어지던 빗방울이 선명하다. 하루가 지루하게 흘러가면, 누구라도 창 너머에서 다가와 주기를 기다렸다. 친구가 부를라치면 냉큼 달려나가던 어린 시절, 내게도 늘 창문이 있었다. 창문은 늘 따뜻한 것만 보여주지 않았다. 허약했던 나를 창밖에서 지켜보던 존재도 있었다. 까만 도포를 입고 까만 갓을 쓴 저승사자 두 명이 퍼런 새벽까지 창밖에서 내 방을 지키고 서 있던 기억, 그때는 무섭다 소리칠 힘조차 없었다.
삶은 균형을 요구한다. ‘발목에 추를 달 줄도, 손목에 풍선을 달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처럼, 삶은 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흔들린다. 신(神)앞에서도 다르지 않다. 두렵거나 힘겨울 때만 신을 찾는다면, 아무리 위대한 신일지언정 섭섭하지 않을까. 때로 신은 우리 때문에 외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기쁘거나 행복한 순간에도 우리는 신과 그것을 나눠야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추와 풍선의 균형을 맞출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