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작가 박완서 / 2020년 초판 / 1일 차 (~p15)

by 지영

< 필사 >

혼자 걷는 게 좋은 것은, 걷는 기쁨을 내 다리하고 오붓하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다리를 나와 분리시켜 아주 친한 남처럼 여기면서, 70년 동안 나를 실어 나르고도 아직도 정정하게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주며, 마치 나무의 뿌리처럼 땅과 나를 연결해 주는 다리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늘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매일매일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러나 산이 나를 받아주지 않으면 이런 복을 어찌 누릴까.(p.17)


길은 사람의 다리가 낸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이기도 하다.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 이 길을 함께 걷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덕분에 내가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p.19)


< 단상 >


1. 나무가 땅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듯, 내 다리는 나라는 존재를 이 대지 위에 굳건히 설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는 글을 읽으며, 새삼 우리 몸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온 생명의 무게를 받치고 매 순간 균형을 잡으며, 묵묵히 나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고마운 존재! 잠시 걸음을 멈춰 서서 내 다리의 굳건함과 소리 없는 피로를 어루만져 봅니다.

2. 주말에 산길을 걸었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나뭇가지를 치우거나 길가의 돌을 골라 주곤 했는데, 그러네요. 사랑은 늘 거창한 결심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내가 지나온 길을 다른 이도 편안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작은 배려였습니다.

우리의 작은 마음이 누군가에게 따듯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