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완서 / 4일 차
<필사>
70년은 끔찍하게 긴 세월이다. 그러나 건져 올릴 수 있는 장면이 고작 반나절 동안에 대여섯 번도 더 연속 상연하고도 시간이 남아도는 분량밖에 안 되다니, 눈물이 날 것 같은 허망감을 시냇물 소리가 다독거려 준다.
<단상>
70년의 삶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기억으로 떠오를 수 있는 장면이 매우 적다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동시에 아쉬움이 밀려왔다. 자서전을 쓰겠다는 이들을 볼 때면, 그들의 선명한 기억력에 감탄하게 된다.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메모 습관조차 들쑥날쑥하니 아쉽다.
정리벽도 없다 보니 챙겨 올 기억이 없을뿐더러, 또다시 맞이하는 오늘을 살아가느라 과거를 들춰볼 여유도 없었다.
다시 어느 시절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힘들어서 싫다며 손을 내젓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살 기회를 준다면 또다시 열심히 살 것 같다. 더 사랑하고, 더 느끼며, 이 세상과 호흡하고, 또 공부하며...
20대 중반의 딸은, 다시 태어난다면 좀 무디게, 그냥 대략 살아내도 그다지 상관없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은 아마 매 순간 치열했을 것이며, 그 모든 순간이 다 가치로왔을 것이다. 그랬기에 우리는 저마다, 지금의 시간, 오늘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기쁘거나 고통스럽거나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없을 것이기에, 남은 우리의 삶을 응원하고 넉넉하게 차도 마시며, 오늘 하루도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