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엔셜 / 김신지 에세이
<필사>
내게 입절기는 늘 ‘배웅’과 ‘마중’의 시간이다. 입춘은 떠나는 겨울을 시간 들여 배웅하고, 다가오는 봄을 마중 나갈 때라고 알려준다. 미루다 놓친 겨울의 즐거움이 있다면 이참에 챙겨두라고 눈을 내려주기도 하고, 이른 꽃 소식을 통해 봄엔 어떤 즐거움들을 통과하고 싶은지 묻기도 하면서, p24
낮이 길어지고 있어, 곧 봄이 올 거야.
입춘이란 말이 무색하게 폭설이 찾아올 때도 있고 아침 기온이 뚝 떨어질 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동지 이후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한 해가 지구를 천천히 데우고 있다는 사실, 말하자면 지구는 너무 커다란 집이라 데우는 데 시간이 걸릴 뿐. 기다리면 바닥부터 서서히 따뜻해지리란 걸 안다. 동지로부터 한 달 반이 지나 이제 막 땅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옛사람들이 연중 가장 긴 밤을 지나 낮이 다시금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를 ‘하늘의 봄’이라 부르고, 그 후 햇볕이 땅에 차곡차곡 쌓인 다음 찾아오는 입춘을 ‘땅의 봄’이라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네 번의 입절기는 이처럼 땅에 번지기 시작한 새로운 계절(節)의 기운(氣)을 가리킨다. 녹지 않은 눈 아래를 살살 헤쳐 보았을 때 빼꼼히 머리 내민 새싹처럼, 눈에 띄지 않을 뿐 봄기운은 이미 곳곳에서 일어서고(立) 있을 것이다. p25
<단상>
서울로 올라가기 전, 며느리가 자청하여 주방에 섰다. 무얼 하나 봤더니 봄동 겉절이다. 웬일인가 싶어 바라보는데, 나중에 달걀후라이 하나 얹어 먹으면 된다며 예쁘게도 담아둔다. 알고 보니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즐겁게 건강을 챙기는 '헬시 플레저' 음식 중 하나란다. 우리 집에 봄은 그렇게 왔다.
지난 가을, 알뿌리를 하나씩 옮겨 심었다. 얼어붙은 흙속에서 홀로 겨울을 견뎌낸 알뿌리들이 봉긋한 새순을 밀고 올라왔다. 수선화다. 양파처럼 생긴 구근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어나는 과정은 밝은 햇살 속에서 마주하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꽃말처럼, 누군가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하기에도 참 좋은 꽃이다.
며느리가 가져다준 ‘입안의 봄’, 추위를 이겨내고 올라온 ‘눈앞의 봄’, 봄은 사랑이고 희망이다. 실내에만 머물다 보니 이미 곁에 와 있는 봄을 미처 모르고 지날 수 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내게 온 봄을 찬찬히 걸어봐야겠다.